사설·칼럼 fn스트리트

[fn스트리트] 포스코 1고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2.26 18:00

수정 2021.12.26 18:00

1973년 6월 9일 포항 제1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오자 박태준(가운데) 당시 포항제철(현 포스코) 사장과 임직원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포스코
1973년 6월 9일 포항 제1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오자 박태준(가운데) 당시 포항제철(현 포스코) 사장과 임직원들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사진=포스코
1973년 6월 7일 포항제철소(현 포스코) 본관 앞. 박태준 사장은 돋보기로 햇빛의 초점을 채화봉 끝에 모아 불을 피웠다. 불은 다음 날 8일 아침 7명의 봉송 주자에 의해 옮겨진다. 오전 10시30분 박 사장이 1.8m 길이 화입봉에 그 불을 댕겨 풍구 속으로 들이밀었다. 고로(高爐·용광로)에 불이 붙었다. 거의 하루가 지난 9일 오전 7시30분. 고로 구멍이 펑하고 뚫렸다.
오렌지색 섬광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용암같이 벌건 쇳물이 흘러내렸다. 기적의 한국경제 출발이 됐던 포스코 1고로 쇳물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경북 포항의 영일만 허허벌판에 제철소(1968년 4월 1일)를 세우는 일부터 가시밭길이었다. 언론에선 부실기업 하나 더 만드는 허튼짓이라는 비아냥도 서슴지 않았다. 박 사장은 대일 청구권 자금까지 끌어왔다. "조상의 핏값으로 짓는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조상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실패하면 우리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 바다에 빠져 죽자" 했던 말은 유명하다.

첫 쇳물이 터지던 날 찍힌 사진에 박 사장의 얼굴은 굳어 있다. 여러 기록물에 당시 그의 심경이 나온다. "이 쇳물을 정말 사용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만든 철강제품을 정말 팔 수 있을까.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빨간 안전모로 맞춰 쓴 고로공장 직원 요청이면 달리던 차도 멈춰 섰다. 우리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을 정확히 약속한 날짜에 해냈다."

1고로 쇳물은 우리 경제의 젖줄이었다. 여기서 나온 쇳물로 현대중공업의 배가 만들어졌고 자동차, 항공, 기계, 건설산업이 일어났다. 포스코는 이제 연간 4000만t 이상의 조강생산능력을 갖춘 세계 5위 철강사로 거듭났다.

대한민국 산업부흥의 주역인 포스코 1고로가 오는 29일 48년 생을 마감하고 퇴장한다.
포스코는 1고로를 기념관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철강산업은 친환경 원료기반 기술혁신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포스코의 저력을 믿는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