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바다’는 필수 자원의 고갈로 황폐해진 근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특수임무를 받고 달로 떠난 정예 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은 8부작 드라마다. 동명 단편을 연출한 최항용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배두나는 우주생물학자 송지안 박사 역을 맡아 탐사대장 역의 공유와 함께 극을 이끈다. 배두나는 “외국에서 SF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2013년)를 찍어봐서 한국의 예산 규모로 SF물을 만드는 것에 의구심이 있었다”며 “하지만 최 감독의 단편을 보고 이 사람과 함께라면 할 수 있겠다, 특히 배우의 얼굴과 심리를 따라가는 작품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평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밝힌 그는 우주인이 된 소감도 밝혔다. “내가 우주복까지 입어보는구나. 배우의 장점이 한번 사는 동안 여러 인생을 살아보는 것인데, 정말 감사한 인생이라고 느꼈다.” 물론 우주복을 입고 촬영하는 것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초반 며칠은 아주 감사했는데(웃음) 우주복이 너무 무거워 (그 마음이 사라질 정도로)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의상을 입는 자체가 챌린지 같다고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신발부터 헬멧까지 모두 착용하면 굉장히 무거웠다. 소리도 잘 안들려 진짜 달에 있는 것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환경문제 등 작품 속에 녹아있는 다양한 사회문제도 작품의 매력 요소였다. 그는 “이전엔 펑펑 쓰던 물을 좀 더 아끼게 됐다. 내가 대놓고 사회적 발언은 잘못하는데 이렇게 영화를 통해 하는 것은 좋아한다. 영화의 순기능”이라고 흐뭇해 했다.
앞서 공유는 “배우들간 단합이 잘됐고 더할 나위없이 잘 맞았다"고 했다. 배두나 역시 공감하며 “서로 웃겨주고 웃어줘 힘든 기억은 거의 없고 웃고 신났던 기억뿐”이라고 회상했다. 직접 현장에서 와플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던 그는 “솔직히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처음 시도하는 달 배경 드라마라 참고할만한 것이 없었다. 배우뿐 아니라 제작진 모두 예민하고 부담스런 상황이었다. 실제로 별의별 극한상황에 다 처했다. (와플을 만든 건) 그런 부담을 덜고 예민함을 풀고자 시도한 것이다. 가족처럼 지내면서 잘 찍었다고 기억하려던 것"이라고 속내를 전했다.
‘고요의 바다’는 화려한 볼거리로 무장한 SF장르는 아니지만, 우주의 적막함과 달의 표면을 완성도 있게 담아냈다. 특히 착륙선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대원들이 발해기지로 향하며 밟는 달 표면은 마치 송 박사의 심리처럼 적막하면서도 잔잔하다. 배두나는 “정말 미지의 달에 발을 딛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야심찬 세트였다”며 “발해기지의 복도 세트들은 우리집이 크면 갖고 가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모델 출신의 배두나는 세기말의 독특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특히 주목받았다. 동명의 일본영화를 리메이크한 ‘링’으로 데뷔한 그는 TV드라마 ‘학교’(1999년)로 얼굴을 알렸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년)로 제21회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받았고,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년)으로 존재감을 이어갔다. 봉 감독의 ‘괴물’(2006년)로 천만배우 대열에 합류한 그는 이 작품을 보고 반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의 디자이너와 함께 휴가를 보낼 정도로 ‘절친 사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트릭스’로 유명한 워쇼스키 자매가 연출한 판타지 SF ‘센스8’(2015년)와 ‘킹덤’(2019년)으로 글로벌 인지도를 쌓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2010년), 프랑스 영화 ‘아이엠히어’(2021년)를 통해 다양한 국가의 감독과 협업했다. 또 독립영화 ‘도희야’(2014년), 드라마 ‘비밀의 숲’(2017, 2020년) 등 예산의 크기나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배두나는 “장르나 주·조연 등 비중에 상관없이 좋은 작품이면 블록버스터도 하고 독립영화도 했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어느 순간 작품에선 내가 몸을 사릴 필요가 없다. 더 많이 부딪히고 많은 작품을 하는 게 내 전투력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부연했다. 지난 20년간 한국 콘텐츠 산업은 빠른 속도로 변화·발전했다. 그 중심에 있었던 배두나는 “한국의 콘텐츠산업은 더 좋게 발전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활동 무대가 세계로 넓어진 것과 관련해선 “일본, 미국, 프랑스 등에서 일하면서 우리와 참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동시에 내 자신과 한국영화를 좀 더 객관적으로 또 넓게 보게 됐다”고 평했다. 그리고 “(‘고요의 바다’를 계기로 인터뷰하고 있는 지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며 어느덧 40대로 진입했지만 여전히 소녀처럼 웃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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