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곁에 남은건 늑대 아닌 개 친화적 존재가 '진화의 승자'
누군가에겐 파동을 일으키는 이 세상의 작고 소중한 존재들
누군가에겐 파동을 일으키는 이 세상의 작고 소중한 존재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유명 영화 대사처럼, 배려의 가치는 금세 떨어지곤 한다. 선한 의도로 베풀기 시작한 배려는,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한 것으로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약육강식이 팽배한 사회에서 사람들의 관계를 서열대로 나열해 본다면, 가장 아래층은 조건 없이 다정을 베푸는 사람들의 몫이다. 앞서 말했듯 금세 호구로 취급을 당하거나 선뜻 내민 따뜻한 호의는 오히려 차가운 대답으로, 이를 이용하고자 하는 악한 마음으로 상처가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강해 보이기 위해 다정한 마음을 선뜻 내밀지 못한다. 결국,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신 또한 피해를 받지 않는 게 미덕이 되었다. 희생과 배려, 다정보다는 나를 지키는 게 우선인 사회. 이 가운데서 다정의 가치를 외치는 책들이 등장해 사랑받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밀리의서재에서 1만명이 넘은 회원들의 선택을 받았을뿐 아니라, 발간된지 얼마 되지 않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펴냄)는 특이하게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다정을 바라본다. 저자는 약육강식, 강한 것들이 살아남는다는 이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저자는 다정한 것이 진정으로 강한 존재라고 말한다. 육체적 강함을 드러내기보다 다정하게 다가가 더 많은 친구를 만드는 존재야말로 다음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예를 들어 늑대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것에 반에 같은 조상이지만 늑대보다 뼈가 가늘고 힘도 약한 개는 더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며 오랜 시간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를 저자는 개가 인간에 그리고 환경에 친화적이고 다정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런 맥락으로 생각해 보면, 다정은 오히려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강력한 무기가 된다. 책에 따르면, 지금 당장은 무시를 당할지 몰라도 결국 살아남는 건 다정하고 친화적인 사람이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우선시하는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우리'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지혜롭게 강자가 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 각박한 사회에서 우리가 다정으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다정소감'(안온북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아무튼, 술',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의 작가 김혼비가 다정함을 느꼈던 수많은 순간과 그에 대한 소감을 모은 에세이다. 저자에 따르면 다정은 마음속에 작고 소중한 감정을 낳는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가 모아둔 감정을 훑어보다 보면 우리는 다정을 다짐하게 되고, 그렇게 차가운 세상에서 살아날 무기를 얻게 된다.
우선 저자가 말하는 다정은 대단한 게 아니다. 작고 희미하고 잊히기 쉬운 것으로, 예를 들면 김솔통 같은 존재다. 김에 기름을 바르는 솔을 담는 통은 김에게도 기름에게도, 심지어 김솔에게도 우선순위가 밀리는 아주 미약한 존재이지만 그래도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물품이다. 또한 자신을 통해 '김솔'이라는, 사람들에게 쉽게 잊힐만한 다른 도구 또한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만드는 존재. 그가 생각하는 다정은 딱 이만큼의 역할을 한다. 세상의 주인공이 될 수도 없고 세상을 바꿀 만큼 큰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그래도 어떤 작은 존재를 생각하게 하고 자그마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역할. 이 작지만 따뜻한 배려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
책에서는 다정의 동기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라 말한다. 우리가 이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아무리 각박한 사회에서라도 다정의 명맥은 이어질 것이다. 어쩌면 차디찬 상황 속에서 다정의 가치를 논하는 두 권의 책이 이처럼 사랑받는 이유 또한, 사람들이 다정하고 따뜻한 사회를 원한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책은 말한다. 마음껏 따뜻해도 된다고. 마음껏 마음을 표현해도 된다고. 따뜻한 배려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직 존재하고 결국, 다정한 사람들이 살아남을 것이다.
박혜주 밀리의서재 에디터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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