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최진숙 칼럼] 슬픈 운명 우크라이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1.12 18:06

수정 2022.01.12 18:06

[최진숙 칼럼] 슬픈 운명 우크라이나
몇 해 전 에스토니아 탈린의 구시가 골목에서 악기 반두라를 처음 보았다. 기타처럼 생겼으나 목은 짧고, 몸통은 얇은 우크라이나 민속 현악기가 반두라다. 우크라이나 출신 건장한 청년이 이 악기로 한없이 슬픈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에 맞춰 노래하던 또 다른 청년은 저음의 굵은 목소리였다. 그 민요풍 노래 가사가 우크라이나 민족시인의 시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 알게 됐다.


'울부짖으며 신음하는 넓은 드네프르 강이여!/ 성난 바람 불어와 버들가지 땅으로 휘감고/ 집채만 한 파도 들어올리는구나.' 시인이자 화가, 사상가였던 셰브첸코(1814~1861)가 나이 스물셋에 쓴 그의 첫 시 '광인(1837년)'의 앞부분이다. 우리의 '아리랑'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는 슬라브족의 첫 통일국가 키예프 공국의 후계자다. 러시아는 키예프 귀족들이 몽골 침략을 피해 모스크바로 달아나 거기서 세운 공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날로 번성한 모스크바와 달리 키예프 일대는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 이웃의 침략을 두루두루 받는다. 1654년 폴란드 압제를 벗어나려 우크라이나가 끌어들인 상대가 로마노프 왕조였다. 300여년 러시아 속박의 출발점이 된 최악의 카드였다.

조국의 울분을 담은 셰브첸코의 시는 악명 높은 차르 니콜라이 1세 막바지 더욱 격해진다. '이 흡혈귀들아 이 살인마들아 너희들이 우리의 살아있는 피를 빨지 않았더냐'(1843년 '꿈' 중 일부). 이 시로 그는 우랄산맥 근처로 유배까지 갔다. 러시아문학의 아버지 고골을 겨냥한 시도 있다. 고골은 우크라이나 출신이면서 러시아어로 작품을 썼다. 셰브첸코는 '고골에게(1844년)'라는 시에서 '고골, 당신은 웃지만 나는 통곡한다'고 썼다.

러시아는 그 반대로 우크라이나에 집착했다. "우크라이나를 잃으면 러시아의 머리를 잃는 것과 같다"고 말했던 이가 혁명가 레닌이다. 비옥한 흑토, 넘치는 자원은 수탈을 면치 못했다. 스탈린 시대 혹독한 공출로 우크라이나인 1000만명이 굶어죽은 '홀로도모르(대기근)'가 그 적나라한 예다.

셰브첸코가 염원하던 조국의 독립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갑작스럽게 왔다. 준비를 못했던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친러에 급급하다 두 차례 시민혁명을 불렀다. 지금의 친서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적극 추진해온 것은 안보를 위한 고육책이다. 이것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려 나라가 통째로 침공 위기에 놓였으니 약소국의 비극이다.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제국적 욕망을 억제할 지정학적 급소로 봤던 이가 미국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다. 그는 '거대한 체스판(1997년)'에서 러시아의 유럽적 정체성 기반이자 러시아 부활의 조건으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다. 우크라이나가 서방으로 편입될 경우 유라시아 재건 멤버는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정도로 쪼그라든다.

침공 명분을 찾던 푸틴이 지금을 즐기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중국과 격렬한 패권싸움을 벌이고 있는 미국은 유럽에 또 다른 대립전선을 끌고 가기 쉽지 않다. 러시아에 이 역시 나쁘지 않다.
서방과 러시아는 지금 담판을 벌이는 중이다. 12일(현지시간, 브뤼셀), 13일(오스트리아) 협상이 남아있다.
여기에 정작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는 없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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