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7월 9일. 그날 오후부터 깜짝 놀랄만한 속보가 방송 매체와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다.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소식이었다. 뒤이어 나온 소문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의 실종이 '미투'와 관련됐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뉴스였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전 국민의 이목은 당연히 후속 보도에 쏠렸다. 당일 자정이 막 지난 이튿날 새벽 0시 1분경, 박원순 시장은 북악산 숙정문 산책로 인근에서 타살 혐의가 없는 싸늘한 주검으로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박 시장이 전 비서에 의해 성폭력 가해자로 피소됐다는 사실이 실종 및 사체 발견 소식을 전하는 속보와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피해호소인'으로 불렸던 이 사건의 주인공이 김잔디(가명)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다. 책의 제목은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천년의상상 펴냄). 김잔디라는 이름은 '성폭력특례법상 성범죄 피해자는 절차에 따라 가명을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피해자가 임의로 선택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에는 박원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김잔디씨가 자신이 입은 피해 내용을 비롯해 고소에 이르게 된 과정, 박 시장 죽음 이후에 끊임없이 자행된 2차 가해의 실상, 그로 인한 상처를 극복한 과정과 그 생존의 기록 등이 생생하게 담겼다. 책 말미에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남동생 등 가족의 목소리도 함께 실었다. 저자는 "나와 가족들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해 글을 썼다"고 책에 밝혔다.
저자는 이어 "힘들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시간이었다. 힘들다는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아픔이었다.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가까스로 부여잡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용기내어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 살고 싶어지고,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지나간 아픔을 과거형으로 끝맺고 싶어졌다"고도 썼다.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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