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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역사전쟁'...日기시다 "'징용'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 추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1.28 20:45

수정 2022.01.28 21:30

기시다 총리, '징용 현장'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 
韓반발에 등재 가능성 떨어지자 
당초 '보류'로 기울었으나 아베 반발에 '선회' 
아베 "역사전쟁, 싸워야"...극우여론 주도 
日, 군함도 등재 당시 약속 지키지 않아 
되레 강제노동은 없었다고 '왜곡'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로이터 뉴스1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로이터 뉴스1
【도쿄=조은효 특파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8일 일제 강점기 조선인 징용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기시다 총리는 한국의 반발로 현실적으로 유네스코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판단, 신중한 입장을 취했으나 아베 신조 전 총리 등 자민당 보수우파의 강행 압력을 결국 이기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아베 전 총리는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에 대한 한국의 반발에 "역사전쟁"을 외치며, 일본 극우여론을 자극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저녁 일본 도쿄 나가타초 총리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 결정 사실을 알리며, "올해 신청해서 조기에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등재 실현의 지름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일정상, 내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면 다음 달 1일까지 유네스코에 공식 후보로 추천해야 한다.
이후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회의회(ICOMOS·이코모스)가 현지 조사를 포함한 약 1년 반 동안의 심사를 거쳐 내년 6~7월에 사도 광산의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한일간 외교 대결이 불가피해졌다.

이미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도 광산이 조선인 강제 노동 현장이라는 한국의 주장에 대해 "우리 입장을 토대로 '반론'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내부. 로이터 뉴스1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 내부. 로이터 뉴스1

기시다 총리는 이미 역사논쟁에 총력을 다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사도광산이) 높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번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대한 여러 논의·의견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관계 부처가 참가하는 세계유산등록 등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설치해 역사적 경위를 포함한 여러 논의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아베, 보류 기류 뒤집어..."싸울 땐 싸워야"
당초에는 한국의 반발로 인해 현실적으로 등재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 올해 추진은 보류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한번 추천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다시 등재를 추천하기 어렵다는 부분도 주목하는 눈치였다. 여기에는 난징대학살, 위안부 등의 등재를 막기 위해 수 년 전 일본이 쓴 꼼수가 되레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 많았다. 지난해 4월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등재시 회원국의 반대(이의제기)가 있을 경우, 세계기록유산등재 절차가 진행되지 않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당시 이 제도 변경은 일본이 주도한 것이었다. 불과 1년만에 이것이 일본의 사도광산 등재 추진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내년 이후의 상황을 지켜본 뒤, 그 때가서 추진하자는 신중론으로 기우는 듯 했다. 그때부터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극우정치인들의 기시다 총리를 향한 압박이 시작됐다. 아베 전 총리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년으로 추천을 미룬다고 해서 등재 가능성이 커지지 않는다며 "(한국이) 역사전(歷史戰)을 걸어오는 상황에서는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베 전 총리의 지원으로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왔던 다카이치 사나에 당 정무조사회장도 "일본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며 기시다 총리를 압박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 일명 '군함도'. AFP 뉴스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 일명 '군함도'. AFP 뉴스1
■제2의 군함도는 막아야
지난해 자민당 총재선거 때 아베파와 아소파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된 기시다 총리로서는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압승으로 이끌어야, 비로소 자기정치가 가능해진다. 사도광산 문제에서 후퇴한다는 인상을 줄 경우, 보수우파 지지층의 이탈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중의원 선거에서 오사카 기반의 극우정당인 유신회가 제3당으로 약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 정치에 기반한 결정이었으나, '최악의 관계'라는 한일관계엔 악재가 추가되는 형국이 됐다.

문제의 사도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사도섬에 위치한다. 에도시대(1603∼1868년)부터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들이 동원돼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이 인원은 1200명에서 2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2015년 하시마(일명 군함도)탄광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당시, 국제사회를 향해 강제노역의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리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다. 되레 2020년 개관한 산업유산정보센터(일본 도쿄 신주쿠구 소재)를 통해 하시마에서의 강제노동은 없었다고 주장, 역사왜곡을 자행했다.
때문에 한국정부로선 이번 사도광산 문제에 있어서 물러설 여지가 없게 됐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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