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연일 경고의 북소리를 울리고 있지만, 정작 러시아는 조용하다. 심지어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조차도 아직 러시아의 침공 임박설을 부인하고 있다.
31일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혈액을 대량 공급한 징후를 포착했다고 복수의 미 국방부 고위 관리가 밝혔다.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혈액 등 의료 장비를 공급한 것은 군사 장비 축적과 함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의 일환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최전선에 혈액을 대량 공급했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한나 말리아르 우크라이나 국방부 차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러시아가 혈액 공급과 기타 의료 물품을 우크라이나 국경으로 보냈다는 정보가 인터넷에 퍼지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이 펼치는 심리전의 일종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침공시 구소련 시절의 기만전술을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하더라도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보다는 기만전술이나 게릴라 전이 먼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심지어 전세계적인 빅 이벤트인 베이징동계올림픽 기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나설 것이라고 미 국무부는 예상했다.
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대부분의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대규모 공격으로 침공을 시작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보다는 확전의 명분을 찾기 위한 애매한 소규모 행동으로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NYT는 전했다.
기만전술에 능한 러시아가 어떤 식으로 침공할 지 예상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접경지역에 12만7000명의 군대를 집결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스라엘 라이히만 대학교 러시아 안보전문가 드미트리 아담스키는 "군대를 집결시킴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시나리오를 상상하게 만들지만 전략적 의도를 감추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워낙 기만전술에 능해 첫 공격이 어떤 것일 지를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014년 우크라이나 공격 때 러시아의 기만전술이 잘 드러났다. 당시 마스크를 쓴 정체불명의 군인들이 크림반도에 나타나 혼란을 야기한 바 있다. 프라하의 봄부터 아프가니스탄 전쟁, 체첸 전쟁까지 지난 반세기 동안 발생한 러시아의 군사 개입은 혼란을 유도하는 위장이나 기만 작전부터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과 미국 외교관들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시나리오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국경에서 몇 km 거리에 있는 동부 반군 장악 지역 내 암모니아가스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치명적인 고농축 암모니아 가스가 우크라이나와 반군 또는 주민이 중독되는 사고가 발생하면 러시아가 제독 전문팀과 이들을 보호하는 군인들을 파견한다는 것이다.
지난 달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미국 용병들이 미확인 화학물질을 우크라이나 동부에 반입했다고 주장했다.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독가스를 유출시켰다고 주장하기 위한 사전 준비처럼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함정이 근접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는 아조프해에서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또 반군 장악 지역의 러시아어 사용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위장 공격도 있을 수 있고 미국, 영국, NATO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 러시아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정치적 개전 이유를 내세울 수도 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군사적 대치가 하루가 다르게 날카로워지고 있지만 장작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표면적으로 태연한 척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계산된 전략이라는 평이다.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공포와 혼란이 커지도록 하려는 러시아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게 우크라이나 정부가 겉으로 동요하지 않는 이유라는 것이다. 공포심을 노출하는 것은 실제 전쟁 전부터 적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꼴이라는 것을 우크라이나 정부도 잘 알고 있다고 NYT는 해석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 "새로울 게 뭐가 있나. 8년 동안 겪어온 현실 아닌가. 침공은 2014년 시작되지 않았나. 이러한 위험은 전부터 있었다"고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우려고 했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