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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고무줄 양형’ 되나… "사례 쌓일때까지 불가피" [법조 인사이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2.06 17:15

수정 2022.02.06 17:15

대법 양형위 기준 설정 논의 안돼
산안법 참고 땐 입법 취지 안맞아
일정기간 법관마다 ‘양형 편차’ 우려
"국민 상식 맞는 ‘규범적 조정’ 필요"
중대재해법 ‘고무줄 양형’ 되나… "사례 쌓일때까지 불가피" [법조 인사이트]
중대재해법이 시행됐지만 법관이 형을 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양형기준은 아직 마련되지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법조계는 중대재해법 사건 판례가 쌓이기 전까지 '고무줄 양형'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해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양형기준을 참고할 경우 CEO 책임을 강화하는 중대재해법 입법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고 사례 쌓일 때까지 양형편차 불가피"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월 27일부터 본격 시행된 중대재해법에는 따로 설정된 양형기준이 없다. 양형기준을 마련하고 심의하는 대법원 양형위원회(양형위)의 중대재해법의 양형기준 설정 논의는 시작도 되지 않은 상태다.
실제 법원에서 심리를 통해 선고한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상상을 통해 범죄 영향을 가늠하고, 이를 통해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다.

대법원 양형위 관계자는 "양형위가 도입되는 모든 범죄에 대해 선제적으로 양형기준을 설정하면 입법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어 새로 도입된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을 설정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했다.

양형기준은 같은 범죄에 대한 형량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고무줄 양형' 시비를 없애기 위해 지난 2009년 도입됐다. 양형기준에 구속력은 없지만, 양형기준을 이탈하는 경우 판결문에 양형기준을 별도로 기재해야 해 양형기준 준수율은 90%를 웃돈다.

하지만 법 시행 초기에는 양형기준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기본적으로 최근 판례의 평균값으로 권고 형량 범위를 정하는 양형기준 설정 방식 때문이다.

김한균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양형기준 설정에 참고할만한 자료가 전혀 없는 새로운 법이 제정된 경우 양형기준을 마련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며 "산안법 양형기준 등 참고할 선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관대한 처벌 탓에 새롭게 도입된 중대재해법의 입법 취지나 이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전문가 "규정적 조정 필요"

이 때문에 유사한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에 대한 양형 판단이 법관마다 지나치게 벌어지는 '양형 편차'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판사 출신 김태규 변호사(변호사김태규법률사무소)는 "현재 시행 중인 양형기준도 징역 1년~1년6개월 식으로 세분화돼있지 않고 3~6년식으로 폭이 굉장히 넓다"며 "양형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느 정도 양형 판단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선고 사례가 쌓일 때까지 일정 기간 양형 편차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1심 법원은 산안법의 권고 형량 범위를 먼저 살핀 뒤 중대재해법 제정의 의미를 따져 양형 판단을 할 것"이라며 "1심 법원의 양형에 대해 양형 부당을 이유로 피고인이나 검찰 쪽에서 항소하면 항소심에서 양형에 대한 실무적 기준이 세워지게 돼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 입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법원 양형위가 전향적인 '규범적 조정'을 할 필요 있다고 강조한다. 규범적 조정은 양형에 대해 비판 여론이 큰 범죄들에 대해 권고 형량 범위의 상·하한을 상향 조정하는 정책적 판단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산안법 위반 범죄에 대한 법원의 양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양형을 강화하라는 취지로 법정형을 상향하는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진 것"이라며 "중대재해법의 권고 형량 범위 상한을 높이고 감경 요소를 줄이는 등 입법 취지에 맞게 별도의 중대재해법 별도 양형기준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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