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박찬욱 감독의 단편 '일장춘몽'은 내 손안의 휴대폰으로만 찍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영상미와 유머감각 그리고 한국적 색채까지 20분 가량의 단편이지만, 완성도에 있어서는 극장 개봉작으로도 손색없다.
홍콩영화 ‘천년유혼’을 떠올리게 하는 이 영화는 호러로 시작해 판타지, 무협,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로 발전한다. 특히 한평생 무림고수로 살다 죽은 두 젊은 남녀 검객의 영혼 결혼식은 한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신명나는 한 편의 마당극으로 거듭난다.
박찬욱 감독은 11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언제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걸 아이폰으로 찍을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라며 “전문가용 카메라에 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장의사 역할의 유해진, 무림고수 역할의 김옥빈과 박정민 그리고 촬영감독 김우형이 함께했다.
'일장춘몽'은 감독 박찬욱·미디어 아티스트 박찬경 형제가 새롭게 선보인 아이폰 영화다. 아이폰13프로로 찍었다. 두 사람은 2011년 아이폰4로 ‘파킹찬스’라는 팀을 만들어 단편 ‘파란만장’을 찍었다.
박감독은 “첫 아이폰 단편영화에 대한 기억이 좋아 기회가 생기면 계속 단편을 찍었다”며 “이번엔 보다 진보된 테크놀로지가 탑재된 기계로 ‘일장춘몽’을 찍게 됐다”고 말했다.
“제목을 사자성어에서 따왔는데, 제목과 작품이 더없이 잘 어울린다. 인생이 그저 한바탕 덧없는 꿈이라는 소리인데, 그냥 몽이 아니라 춘몽이라고 한 것은, 덧없는데 아름다운 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름다우나 덧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부연했다.
‘일장춘몽’은 박 감독의 첫 무협물이자 우리의 소리로 만든 마당극이다. “이런 작은 전화기로 찍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자유로움이었다. 특정 장르영화가 아니라 마음대로 장르를 오가는, 그런 이미지가 떠올랐다. 스토리를 풀다보니 마당극과 같은, 잔치판처럼 소리꾼이 나와 판소리도 하는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
특히 마지막 영혼 결혼식 장면이 압권이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로 유명한 모니카가 안무감독으로 참여해 흥을 더했다. 박감독은 “TV서 ‘스우파’를 우연히 접하고 푹 빠졌다”며 “특히 모니카의 팬”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보통 그린 배경 앞에서 찍고 나중에 CG로 합성하는데 이번엔 LED 화면에 배경 영상을 틀어넣고 바로 찍었다. 마치 그 공간에 있는 듯한 기분으로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어 아주 좋았다”고 만족해했다.
김옥빈은 하이라이트 장면과 관련해 “풀벌레, 나무 등 공간 자체도 몽환적이었다. 산수화를 보듯 아름다웠다. 저승길에서 한판 춤을 추는 그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며 회상했다. 유해진 역시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며 “이 작품의 복합적인 요소가 응축돼있다”고 부연했다.
■김우형 촬영감독 "아이폰 카메라에 대한 믿음 생겨"
김우형 촬영감독은 박감독과 BBC 시리즈 ‘리틀 드러머 걸’이후 두 번째 호흡을 맞췄다. 김감독은 “박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거절할 촬영감독은 없을 것”이라며 “영화 찍을 땐 큰 장비를 동원하는데, 이번엔 아무런 장비 없이 찍었다. 거의 모든 샷을 손으로 들고 찍었다”고 말했다.
박찬욱은 아이폰4과 13프로의 차이로 “'파란만장'을 찍을 때는 큰 화면으로 보기에 적당한 정도는 아니었다”며 “화질이 깨졌다. 그래서 고감도 필름으로 찍은 것 마냥, 단점을 장점으로 만드는 트릭을 썼다.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었다. TV모니터로 봐도 괜찮은 수준이 됐다”고 비교했다.
김우형 촬영감독은 “처음엔 다른 카메라 렌즈를 껴서 작업하는 걸 고려하고 여러차례 테스트도 거쳤는데, 나중에 아이폰의 카메라로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알아보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시네마틱 기능을 발견했다. 아무런 장치 없이 제품(아이폰13 프로) 그대로 찍었다”며 말했다.
영화에는 실내 공간뿐 아니라 바다, 벌판 등 드넓은 공간도 나온다. 김 촬영감독은 “보통 좋은 조건, 환경을 발견해도 카메라 세팅 등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원하는 순간이 사라질 때도 있는데, 휴대폰은 아무래도 기동성이 높다보니 무언가 좋은 순간을 발견하면 바로 몇 초 만에 사진과 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는 게 강점이었다”며 “빛이 충분하지 않아도 잘 찍혔고, 카메라가 작아서 여기저기 숨겨서 찍기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어떤 장르의 영화도 문제없이 찍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작업을 통해 아이폰 카메라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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