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8시(현지시간)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재외투표가 열리는 주 스웨덴 한국대사관에 만난 양늘씨(32)는 오랜만에 동포를 만나서 인지 설레는 표정이었다. 스웨덴 국토 면적은 대한민국의 5배지만 투표소는 스톡홀름 한국대사관 단 한 곳뿐이다. 양씨처럼 스톡홀름이 아닌 지역에 사는 유권자는 비행기나 기차, 버스, 자동차 등으로 장거리를 이동해 스톡홀름까지 와야 투표할 수 있다. 재외투표 기간은 이날부터 오는 28일까지 6일에 걸쳐 진행된다.
유권자는 투표에 앞서 체온부터 잰다. 스웨덴에는 마스크 규제가 없지만 투표하려면 마스크를 꼭 착용해야 한다. 혹시 마스크를 깜빡하고 챙겨오지 못한 유권자를 위해 대사관 측에서 여분의 마스크를 준비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발행한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내면 투표용지를 즉시 출력해준다. 투표 후 봉투에 넣고 밀봉한 뒤 투표함에 넣으면 된다. 스웨덴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이번 대선 투표에 사전 등록한 재외투표 유권자는 총 409명이다. 첫날에 오전 약 4시간 동안 20명이 넘는 유권자가 투표소를 찾았다. 주로 스톡홀름시내에 살면서 출근 전 짬을 내 투표하러 온 직장인들이었다. 이들은 "투표는 당연한 국민의 권리"라며 기꺼이 한 표를 행사했다.
스톡홀름 서쪽 에스킬스투나에 거주하는 김현우씨(42)는 아이 둘을 데리고 투표장을 찾았다. 아이들을 일찍 깨워 1시간 반을 운전하고 왔다고 한다. 김씨는 "멀리까지 오는게 불편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참정권 행사는 당연하다"며 "아이들은 교육적 측면에서 같이 왔다. 대사관은 스웨덴에서 태극기를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덧붙였다.
32년째 스웨덴에서 거주하는 60대 정혜영씨는 "뿌리가 한국인이라 아무리 해외에서 오래살아도 모국인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며 "이제껏 스웨덴에서 대선에 3번 투표했는데 한국이 잘됐으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30년이상 스웨덴에 살면서도 시민권을 받지 않고 영주권만 갖고있다.
정씨는 특히 최근 대한민국의 국격이 높아졌다면서 이를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경제, 문화가 성장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순간 많이 달라졌다"며 "국가경영을 잘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 여러면에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오전 8시 정각, 가장 먼저 투표소를 찾은 20대 청년 정현동씨도 "성인이 된후 모든 선거에 빠짐없이 투표했지만 재외투표 경험은 살면서 또 언제 해볼지 모르는 것이라서 일찍 투표하러 왔다"며 "한국 대사관에는 처음 와봤는데 입구에서 체온을 재고 마스크도 써서 마치 '작은 한국'에 온 것 같다"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유권자 중에는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 지 선택하는 데 어려웠다고 토로하는 유권자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 대선이 후보자 본인들은 물론 배우자 리스크와 네거티브 선거전 등으로 인해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국인 친구와 함께 투표장을 찾은 20대 최주원씨는 "소수자, 소외자에 관심이 있어 비록 사표가 되더라도 소중한 한 표를 뜻깊게 행사하자는 생각"이라며 투표를 마쳤다.
재외투표 등록이나 신고 절차를 깜빡 잊어 어렵게 투표소까지 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안타까운 유권자도 눈에 띄었다. 한 20대 유학생은 "지난 총선때는 가족이 재외선거인 신고를 해서 투표를 했는데 이번에는 깜빡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외국에서 참정권을 행사하려면 사전에 재외선거인으로 등록하거나 국외부재자로 신고해야 한다.
하태역 주스웨덴 대사는 기자와 만나 "코로나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는 28일까지 재외국민 투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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