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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훈수에 기시다 선긋기... 스가까지 소환된 ‘권력경쟁’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06 17:57

수정 2022.03.06 18:44

‘아베파’ 이끌고 다시 나서는 아베
사도광산·핵 공유 등 정책사안 반기
기시다 정권에 사사건건 영향력 행사
‘범기시다파’로 반격 노리는 기시다
정치기반 보완 아소 부총재에 손짓
‘범고치카이’ 결성해 최대 파벌 노려
조용히 물밑작업하는 스가
당 내 ‘공부모임’ 만들어 파벌 결성 준비
향후 연합 여부 권력구도 잠재 변수로
아베 훈수에 기시다 선긋기... 스가까지 소환된 ‘권력경쟁’ [글로벌 리포트]
【파이낸셜뉴스 도쿄=조은효 특파원】 "권력이란, '정책'을 실현하는 데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죠. 그래서 권력을 잡기 위한 싸움이 있는 것이고, 권력투쟁에서 이긴 자, 힘을 쥔 자가 정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죠."(아베 신조 전 총리)

"아베 전 총리, 당신에게 있어 권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올 1월 일본 NHK 스페셜 중)에 대한 일본의 역대 최장수 총리, 아베 신조의 답변이다. 퇴진과 동시에 정계에서 사라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나, 총리직에서 사임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아베 전 총리는 여느 역대 일본 총리들과 보수의 구심점 노릇을 하며 여전히 권력 싸움의 한복판에 서있다. 비원인 개헌을 완수하기 전까지, 물러나도 물러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그 싸움의 대상은, 단연, 정치기반이 취약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다. 자민당 최대 파벌(의원 94명)인 아베파를 이끌며, 외교안보 등 정책사안을 놓고 사사건건 기시다 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천을 보류하려던 기시다 총리의 구상을 틀어버린 것도 아베 전 총리다.

과거 총리와 외무상으로 연을 맺은 두 사람은 사실 정치적 뿌리부터가 다르다. 기시다 총리가 '경무장, 경제발전, 아시아 외교 중시' 등을 기본 정체성으로 하는 자민당 명문 파벌 '고치카이(굉지회, 현 기시다파)의 프린스'로 불려왔다면, 아베 전 총리는 '재무장, 개헌, 보통국가화'를 추진한 극우 정치인인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를 정신적 지주로 삼고 있는 '기시가문의 도련님'이다.

그런데 최근 이 싸움이 더 복잡해지고, 격렬해지는 양상이다. 아베 전 총리가 2월 말, 우크라이나가 핵이 없어 당했다며, 미국의 핵을 일본으로 들여오자는 '핵 공유' 주장으로 일본 정가에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그의 고모부 사토 에이사쿠 총리(1964~1972년 재임)가 주창, 1971년 이래 일본이 사실상 국시로 하고 있는 비핵화 3원칙(핵을 가지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의 근간을 뒤흔드는 주장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AP뉴시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AP뉴시스

"아베 전 총리의 기시다 총리 괴롭히기다." 일본 정가에서는 아베 전 총리의 핵 공유 주장에 대해 '피폭지' 히로시마 출신으로 '비핵화, 핵군축'을 정치적 신조로 내세우고 있는 기시다 총리를 향해 도발의 수위를 높인 것이란 분석이 많다.

기시다도 나름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모양새다. 자신의 불안정한 정치기반을 보완하기 위해 아베의 맹우,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를 끌어들여, '범고치카이'를 결성하는 것이다. 뜻대로 된다면, 아베파를 누르고, 자민당 최대 파벌로 등극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최근 여기에 변수 하나가 더 가세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다. 무파벌인 그가 파벌 결성을 위한 준비작업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장래 스가파가 누구와 손을 잡느냐가 향후, 권력구도의 잠재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올 봄, '아베, 스가, 기시다', 전현직 총리 3명이 최고 권력을 향한 치열한 수싸움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P뉴시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P뉴시스

"아베가 가장 못견딘 건 韓中에 대한 저자세 외교"

아베 노선 계승을 천명한 스가 전 총리와 달리,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최대 치적으로 불리는 아베노믹스(아베 내각의 경제정책기조)의 한계점을 부각시키며, 분배를 가미한 자신의 경제기조인 '새로운 자본주의'를 전면에 세웠다. 1억 총활약이니, 일하는 방식의 개혁 등 아베표 정책들도 줄줄이 폐기됐다. 아베 전 총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선 이런 말을 했다. "정책기조는 바꾸지 말고, 기시다스러운 '양념'만 쳐달라." 아베 유산 줄폐기에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가졌다고 한다. 내각 최고 요직인 관방장관에 자신의 사람인 하기우다 고이치를 앉히길 원했지만, 기시다 총리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은 것이다.

사도광산 내부.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제공 사진. 뉴시스
사도광산 내부.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연구위원 제공 사진. 뉴시스

'특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중국, 한국에 대한 대응이었다. 지난 1월,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추천하는 문제를 놓고, 기시다 총리의 대응에 폭발했다는 것이다. 당시 기시다 총리는 5월 한국 새 대통령 취임 후 한일관계를 개선할 대화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한다. 어차피 한국이 반발하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등재가 어렵다는 판단도 컸다. 일본 정부의 등재 추천 보류 결정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던 터에, 아베 전 총리가 '한일 역사전쟁'을 띄우며, 공세를 퍼부었다. 곧이어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 '아베 키즈'들이 가세했고, 일본 보수층의 민심이 함께 움직였다. 기시다 총리로선 7월 참의원 선거때까지는 민심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 결국 아베 전 총리로부터 2통의 전화를 받고는, 사도광산을 유네스코에 추천하기로 방향을 틀고 말았다.

그러던 지난 2월 9일, 둘 사이에 '전략적 임시 휴전'이 이뤄지는 듯 했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 전 총리에게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자문을 한 것이다.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전략적으로 협력하자며, 아베에게 화해 손짓을 보낸 것이다.

휴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8일만인 그 달 27일, 아베가 일본 후지TV에 출연해 난데없이 '핵공유'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비핵화 3원칙이란 금기를 깨고, 일본도 독일처럼, 미국의 핵무기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피폭지 히로시마를 정치기반으로 하는 기시다 총리를 자극했음은 물론이다. "기시다 총리의 생각은 아무도 모른다"거나 "카멜레온 같다"는 말이 돌 정도로 평소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잘 밝히지 않는 기시다 총리도 이번엔 발끈했다. 일본 국회 등 공개 석상에서 "핵공유는 비핵화 3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이런 사고 방식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와 같은 논의도 진행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저서 '핵무기 없는 세상'(2020년)에서 핵군축을 자신의 정치 신념으로 강조하며, 일본 핵무장론의 허실을 짚어낸 바 있다.

하지만, 아베의 핵공유론은 예상외로 파급력이 셌다. 극우정당인 일본 유신회, 자민당 극우세력, 일부 야당은 물론이고, 스가 전 총리까지 가세했다. 핵공유론 한방에 기시다 진영 대 반(反)기시다 구도가 명확해 진 것이다.

지난 2016년 5월 27일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1945년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당시 모습. 당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외무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성사시키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AP뉴시스
지난 2016년 5월 27일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1945년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당시 모습. 당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외무상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을 성사시키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AP뉴시스
■기시다, '범기시다파'로 반격하나

기시다 총리의 움직임도 심상치는 않다. 정권 장기화를 위해 기시다파로 불리는 자민당 명문 파벌인 고치카이의 재건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키맨은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다. 현재는 파벌이 쪼개졌지만, 아소파 역시, 고치카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와 더불어, 범고치카이 세력들을 결집에 성공한다면, 120명 정도로, 아베파(94명)을 제치고 단숨에 자민당 최대 파벌로 올라서게 된다. '언제든 끌어내리겠다'고 벼르고 있는 아베, 니카이 등 반(反)기시다 세력들로부터 든든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최근 기시다 총리가 아소 부총재 마음잡기에 열과 성의를 다하는 이유다.

아소 부총재는 올해 82세로 고령이다.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데다, 아소파 핵심인사였던 사토 쓰토무 전 총무상를 필두로 총 4명이 파벌을 이탈해 스가 전 총리쪽으로 간 상태다. 아소파의 위상이 전같지 않아, 기시다총리의 손짓이 먹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을 아베 전 총리가 극도로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기시다 총리에 대한 아베 전 총리의 공세가 이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지난해 11월 10일 일본 국회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대화를 하는 모습. 그 옆으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모습이 보인다. 로이터 뉴스1
지난해 11월 10일 일본 국회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대화를 하는 모습. 그 옆으로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의 모습이 보인다. 로이터 뉴스1

스가, 권토중래 모색...당 2위 파벌설

아베, 기시다의 공개 싸움에 스가의 표정은 아직까지는 포커페이스이나, 그 역시 세력화에 시동을 걸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파벌의 폐해를 비판하며, 무파벌을 정치 신념으로 삼은 그였으나, 최근 당 내에서 '공부 모임'을 만든 것이다. 단순한 공부 모임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일설에 의하면, 그게 파벌을 조직하면, 니카이파까지 포함해 대략 80명은 모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니카이파의 관계자는 최근 한 일본 언론에 "그가 니카이파, 아베파와 함께 '반기시다' 포위망을 결성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아베 전 총리가 그런 스가 전 총리의 움직임을 눈여겨 보고 있다고 한다. 스가파와 연합해, 반(反)기시다 진영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맹우 아소 부총재가 지는 해이라면, 스가 전 총리는 뜨는 해라는 것이다.

그런 아베를 향한 스가 전 총리의 속내는 안갯속이다. 두 사람은 복잡 미묘한 관계다. 아베는 무명의 정치 신인에 가까웠던 스가를 측근으로 기용, 아베 정권 7년 8개월간 한국의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격인 관방장관을 맡겼다. 자신의 후임으로 총리로 추대했으나, 지지율이 하락하자 1년 만에 끌어내렸다. 그 탓에 스가 정권은 1년짜리 단명정권이란 오명을 얻게 됐다. 한 마디로 '은원관계'다. 때문에 되레 기시다 총리와 연합할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1년만에 아쉽게 무대에서 끌어내려졌던 스가의 가치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최근 스가 정권 당시의 디지털화, 탈탄소 정책이나, 코로나19 대규모 접종장 설치 등의 성과를 언급하는 시각이 증가한 것도, 스가 전 총리 복권의 배경이기도 하다.
스가 전 총리의 세력화 가능성이 아베, 기시다 두 사람의 경쟁구도에 일대 변수임은 분명해 보인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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