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노주석 칼럼] 청와대 이전의 정치학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16 18:30

수정 2022.03.16 18:30

[노주석 칼럼] 청와대 이전의 정치학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이라는 비장의 어퍼컷을 작렬시켰다. 권투선수에게 어퍼컷이란 결정타다. 청와대엔 아예 입주하지 않겠다고 했다. 청와대라는 이름도 버릴 참이다. 입문 8개월의 정치 새내기가 휘두르는 쾌검이다.


왜 청와대 옮기기이고, 청와대 지우기인가. 묵은 정치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암덩어리이기도 하다. 백악산(북악산) 아래 청와대 터는 길과 흉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풍수지리학상 천하제일복지설과 천하제일흉지설이 엇갈린다. 고려는 이곳을 수도를 천도할 남경 왕궁 터로 정했지만, 조선은 궁궐로 쓰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무학대사는 "백악산은 흙이 적고 뼈가 드러난 골산"이라면서 "이곳에 궁을 잡으면 5대가 지나지 않아 왕위찬탈의 화가 일어나고, 200년 내외에 나라가 망할 위험이 있다"고 예언했다. 7대 세조의 왕위찬탈과 200년 후 임진왜란이 실제 일어났다.

청와대의 흉사는 건드리면 안되는 땅에 총독 관저가 들어오면서 비롯됐다.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짓고, 뒤에서 총독이 굽어보는 모양새를 노렸다. 해방 직후 군정장관 관사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경무대로 썼다.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이름을 바꿨으나 액운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본래 관저에서 100m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 새 청와대 건물을 지을 때 옛 총독 관저 터는 조선인 풍수가 일부러 흉지를 찍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관저를 지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은 피살됐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하와이와 궁정동 안가에서 죽음을 맞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향 뒷산에서 투신했다.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은 감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청와대 이전 공약이 나온 지 벌써 30년이 지났다.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가 광화문 청사에 집무실을 마련하겠다고 처음 공약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세종시 이전을 내걸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과 2017년 대선 때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옮기겠다고 약속했었다.

왜 못 떠났나. 문 대통령은 취임 1년8개월 뒤 보안과 경호를 이유로 들어 공약파기를 선언했다. 구중궁궐이 주는 실리와 안락함을 택했다. 국민이 청와대 이전이나 해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탈권위와 불통 해소임을 간과했다. 개헌을 하지 않고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쳤다.

청와대는 온갖 심리적 불안과 규제의 진앙지다. 백악관의 3배에 이르는 청와대가 경복궁·북촌·서촌·인사동을 잇는 올드타운의 복합문화벨트를 차단하고 있다. 청와대가 떠나고 백악산과 인왕산의 군사시설과 군사보호구역이 풀리면 서울 강북엔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의 입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제왕적 행태는 그대로 둔 채 공간만 바꾸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가 요체다.
보안과 경호를 들먹이며 사사건건 반대하던 경호처와 경찰, 군이 바로 꼬리를 내리지 않는가. 이제 청와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던 온갖 권위주의의 종말을 즐길 때다. P.S. 1. 어퍼컷에 재미가 들린 선수는 한 방을 노리다가 판정패할 확률이 높다.
2. 청와대 이전에 풍수를 논하는 것은 몰지각한 시대착오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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