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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IMF보다 더 큰 위기" 대기업 중고차 진출에 업자들 울상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20 15:50

수정 2022.03.20 15:51

지난 18일 오후 4시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서서울모터리움 중고차 매매단지. 손님들 없이 한산한 모습이다./사진=노유정 기자
지난 18일 오후 4시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 서서울모터리움 중고차 매매단지. 손님들 없이 한산한 모습이다./사진=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IMF나 리먼브라더스 때보다 더 큰 위기일 수 있습니다."
27년간 중고차 매매업에 종사한 박건영씨(55·가명)는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가양동 중고차매매단지에서 주차된 중고 차량을 보며 이같이 말했다. 박씨는 대기업의 업계 진출로 기존 중소업체들이 줄도산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씨는 "경제 위기는 일시적인 문제지만 대기업의 진출은 시장 판도가 아예 바뀌는 상황"이라며 "아직 겪어보지 않은 위기라 걱정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중고차 매매업종의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면서 기존 중고차 매매업체들은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일자리 뿐만 아니라 중고 타이어 등 관리용품 판매 관련 애프터 마켓도 타격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허위 매물 등 소비자 피해가 지속된데 따른 결과라고 평가했다.

■"업계 비롯해 애프터마켓 줄도산 할 듯"
지난 18일 오후 4시 가양동 중고차매매단지는 손님없이 한산했다. 중고차 판매업자 이모씨(52)는 "온라인 중개 거래가 늘면서 사무실로 찾아오는 고객이 극히 드물다"며 "기존 고객들도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중소벤처기업부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는 중고자동차 판매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현대·기아차 등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중고차 매매업체 관계자들은 중고차업계 일자리를 비롯해 애프터마켓 또한 타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씨는 "중고차 판매 시 차량 수리를 비롯해 외관도 깨끗하게 바꿔서 파는데 이걸 모두 대기업 계열사에서 하게 될 것"이라며 "소규모 카센터, 소규모 공업사, 실내 클리닝, 선팅, 블랙박스 등등 관련 일자리가 많이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무엇보다도 대기업의 자본력을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다른 중고차 매매업자 이모씨(53)는 "대기업은 매입 가격을 높게 쳐주기 때문에 우리가 이길 수가 없다"며 "소비자들이 대기업에 몰려 높은 가격에 팔아도 팔릴 테니까 비싼 값에 사들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위매물 등 병폐 개선 못한 결과
일각에서는 사업권을 보장받았던 중고차 매매업계가 허위 매물 등의 병폐 개선에 실패한 것이 결국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게 된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등록된 중고차 상담 건수는 4만3903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피해구제가 이뤄진 건수는 전체 2.2%인 947건에 불과했다. 전경련의 설문조사에서도 소비자 80.5%는 중고차 시장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낙후됐다고 답했다.

대기업의 중고차매매 사업 진출은 3년째 갈등이 이어진 사안이다.

지난 2013년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중고차매매 사업은 2019년 2월 보호기간이 만료됐다. 이후 중고차 업체들은 생계형 적합업종 추가 지정을 신청했고, 동반성장위원회가 2019년 11월 ‘부적합 의견’을 중기부에 전달했다.
그간 중기부는 결정을 미뤄오다가 대선이 끝난 직후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자동차업계는 환호하는 분위기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입장문을 내고 "완성차 업체들은 심의위 결정 사항을 준수하겠다"며 "기존 중고차 매매상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소비자 권익 증대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beruf@fnnews.com 이진혁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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