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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징비록'을 다시 써야하는 이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3.24 18:37

수정 2022.03.24 18:37

[강남시선] '징비록'을 다시 써야하는 이유
패자에게 반성문을 요구하는 건 잔인한 일이다.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 될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두루뭉술 위기를 넘기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다. 뼈아프지만 실패의 원인을 되짚어보는 건 미래를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임진왜란 후 유성룡(1542~1607)이 '징비록(懲毖錄)'을 남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번 선거의 결과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측면이 강하다. 시쳇말로 자신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발목이 잡히면서 이길 수도 있는 싸움에서 졌다. 통상 5+5년씩 진보·보수 정권이 권력을 나눠 가졌던 것에 비춰봐도 그렇다.


첫 번째 업(業)은 부동산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금방 잊어도 자기 재산을 빼앗기는 것은 결코 잊지 못한다"(군주론)고 썼다. 부동산을 악(惡)으로 치부한 문재인 정부는, 아뿔싸 이 부분을 놓쳤다.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는 오만도 부렸다. 부동산을 살 때, 보유할 때, 그리고 팔 때 천문학적인 세금을 부과하자 많은 사람들은 정권이 내 재산을 빼앗아가려 한다고 생각했다. 정부는 그걸 선(善)으로 포장했지만 모든 국민이 거기에 동의한 건 아니다. 집값이 비싸거나 많이 오른 지역일수록 1번을 찍지 않은 비율이 높았다는 사실이 이를 웅변한다.

두 번째 업은 내로남불이다. "집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거나 "지금 살고 있는 집 빼곤 다 팔라"고 으름장을 놓더니 정작 본인들은 집을 두세 채씩 갖고 있거나, 땡빚을 내 공공연히 부동산 투기에 나서기도 했다. 힘겹게 세상 살아가는 필부(匹夫)들의 세속적 욕망을 손가락질하더니 자신들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드러나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등을 돌렸다. 그 끄트머리에 이른바 '조국 사태'가 있다. "겉으로는 공정을 말하면서도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우리 자신의 의식과 행태에 반성을 촉구한다"(성찰하는 진보)고 썼던 당사자가 그토록 경멸했던 이들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그리고 끝내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 태도는 현 정부를 지지했던 일부 유권자들의 마음마저 돌려세웠다.

세 번째 업은 편가르기다. 이는 겨우 0.73%포인트로 승리한 쪽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선거의 최대 폐해는 나와 너로 편을 가르고 국민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는 40%의 지지자들만 바라보며 정책을 펼쳐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은 제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분들도 진심으로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의 선언은 구두선이 되고 말았다.
내편만 바라봐선 통 큰 정치를 할 수 없다. 네편까지 꼼꼼히 살펴봐야 큰 그림이 그려진다.
이는 이번 선거에서 신승(辛勝)을 거둔 측에서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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