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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조원대 거함' 日도시바, 美사모펀드 품에 안기나 [도쿄리포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01 12:30

수정 2022.04.01 13:44

행동주의 펀드 등에 휘둘리는 도시바
회사 분할안도 '좌초'
이번엔 美 베인 캐피털, 도시바 인수전 착수
공개매수 후, 상장폐지 추진
도시바
도시바
【도쿄=조은효 특파원】 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베인 캐피털이 일본의 전기전자 종합 제조사인 도시바 인수에 나섰다.

도시바는 과거 경영난에 빠졌을 당시 대거 주주로 편입된 행동주의 펀드 등 외국계 자본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면서, 경영 재건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베인 캐피탈은 도시바 단일 최대 주주주인 에피시모 캐피털 매니지먼트와 지분 인수와 관련한 계약을 체결했다. 베인 캐피탈이 도시바 주식공개매수(TOB)에 나서면, 그때 에시피모가 보유하고 있는 도시바 보유 지분 전량을 넘겨준다는 일종의 사전 계약이다. 에피시모 캐피탈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행동주의 펀드로 현재 도시바 지분 9.91%(2021년도 결산보고서 기준 )를 보유하고 있다. 에피시모는 1990년 말 공격적으로 주주운동을 벌였던 일본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 무라카미 요시아키가 만든 무라카미 펀드를 본류로 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17년 도시바 인수전을 위해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는 모습. 사진=서동일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2017년 도시바 인수전을 위해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하는 모습. 사진=서동일 기자

베인 캐피털은 이미 도시바 메모리(현 키오시아)지분 일부를 갖고 있다. 베인은 2017년 SK하이닉스 등과 함께 한미일 연합 펀드를 구성해 도시바 메모리 지분을 인수했다.
이번에도 다수의 연합군들을 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바가 원전 등 국가 기반산업도 거느리고 있어,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 일본 정책금융회사, 일본계 자금 등도 대거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베인은 상장폐지를 전제로 이번 인수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기업가치를 한껏 끌어올린 뒤 장래 적절한 시점에 재상장, 재매각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도시바의 시가총액은 지난달 31일 기준 2조엔(약 20조원)가량으로, 상장폐지와 최종 인수를 위해선 막대한 수준의 인수 자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니혼게이자이는 "베인 캐피털과 에피시모가 손을 잡게 되면서, 다른 외국계 펀드는 도시바 인수를 진행하기 어렵게 됐다"고 전망했다.

도시바 창립 역사. 도시바 홈페이지 캡쳐
도시바 창립 역사. 도시바 홈페이지 캡쳐

도시바는 지난해에도 영국계 펀드에 회사를 통째로 매각한 뒤 비상장화하는 시나리오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엔 주주들의 반발이 극심했고, 이를 추진했던 48년만의 외부 출신 최고경영자(CEO)인 구루마타니 노부아키가 사임에 이르렀다. 이후, 지난해 말 회사를 3개로 쪼개서 각각 상장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행동주의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2분할 안으로 변경됐으나, 이 역시 지난 달 중순에 열린 임시주주총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주주들이 반대하는 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베인은 인수전와 관련 "확정된 사실은 없다"면서도 "도시바를 상장폐지시키기까지는 해결할 과제가 많다"고 밝혔다.

도시바는 일본 첫 수차발전기 제작사인 다나카제작소(1875년 설립)와 일본에서 백열전구를 처음 만든 백열사(1890년)라는 두 업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39년 두 회사가 합병됐고, 1984년부터 현재의 도시바라는 사명을 쓰고 있다.

도시바는 1980~9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2위를 달리고,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 하우스를 인수하는 등 원전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었다. 전성기였던 이 당시 직원수만 21만명(현재 약 12만명)이었다.
종합전기전자 기업일 뿐만 아니라 중공업기업으로서도 명성을 떨쳤으나, 속으로는 곪아들어가고 있었다.

경영진의 잇따른 투자 오판에 분식회계(2015년 발각)라는 부도덕함까지 겹치면서 상장폐지 수준의 극심한 경영난을 겪게 됐다.
자금 수혈을 위해 알짜 사업인 도시바 메모리 지분 59.8%를 베인 캐피털, SK하이닉스 등 한미일 연합 컨소시엄에 매각하고, 대규모 증자를 통해 외국계 자본을 대거 받아들여 구사일생하기는 했으나, 이로 인해 주주들의 경영 개입도 커진 상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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