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농인들 가운데 약 80%는 농인끼리 결혼합니다. 이들이 출산하는 자녀 가운데 90%는 청인인데, 우리는 그들을 코다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농문화와 청인문화라는 이중문화 속에서 살아가면서 부모와 세상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합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그들의 삶을 살펴보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개선해야할 점은 없는지 총 3편의 기사 연재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서울·인천=뉴스1) 박상휘 기자,박동해 기자 = 최근 농인 부모를 둔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코다'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화제를 모으면서 농인(聾人)과 그들의 자녀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그들의 이야기가 간혹 조명되기는 했으나 반짝 관심에 그쳤고 코다 본인들도 코다라는 용어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정도로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생소한 것이 현실이다.
코다는 말 그대로 농인 부모를 둔 자녀를 뜻하는 말로 농사회와 청사회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 어린 나이부터 수어와 음성언어를 동시에 익혀야 하고 부모의 통역 역할까지 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많다. 이들을 지원해야 할 이유와 법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집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밖에선 장애가 되더라"
이현화씨(36)는 생물학적 장애가 아닌 사회적, 환경적으로 장애가 어떻게 규정되는지를 자신의 가족을 빗대어 설명했다.
언어학자이자 국립국어원에서 수어사전 편찬 작업을 하고 있는 현화씨는 농인 부모를 둔 코다이자 청인 자녀의 삶을 그린 '우리는 코다입니다'의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현화씨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물론 부모님의 친구들까지 대신해 통역을 해야 했다. 본인 입으로 "신물 나게 싫을 정도로 많은 통역을 했다"고 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는 고단하고 힘든 일이었다.
그럼에도 현화씨는 주위를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보증금을 내지 못해 가족이 집에서 쫓겨났을 때도 친척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말을 전한 것은 현화씨였고 병원과 법원, 동사무소 등 어른이 필요한 일에도 현화씨는 마땅히 입과 귀가 돼야 했다. 그렇게 현화씨는 일찍이 철이 들었다.
현화씨는 "집 안에서는 모든 가족이 수어를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 밖에만 나가면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게, 그래서 수어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게 손가락질과 눈치를 받고 부끄러운 일이 돼버리는 겁니다. 생물학적 장애 보다 그 사회적 시선이 우리 가족을 장애인으로 규정지은 거죠"라고 말했다.
청인인 현화씨는 집 안과 밖이 다른 사회를 살아가며 어디 한 쪽으로도 편입될 수 없었다. 언제나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런 현화씨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자신과 같은 경험과 처지에 있는 코다들의 모임이었다.
현화씨 역시 대학생이 돼서야 코다라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당시에는 자신을 비하하는 용어는 아닌가 의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4년 미국 출장 중 알게 된 코다 커뮤티니와 2017년 참석한 '코다 인터내셔널 콘퍼런스'(Coda international conference)는 현화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현화씨도 당시 콘퍼런스 참석 당시 느꼈던 감정은 충격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현화씨는 "농인들은 수어를 할 때 발성훈련이 돼 있지 않기 때문에 청인에게는 낯선 소리를 낼 수 있어요. 저도 어렸을 때는 그 소리가 창피했어요. 그런데 그곳에서는 매 순간 코다들이 그 소리를 흉내 내는 거예요. 비하나 놀림이 아니라 기쁘거나 축하가 필요할 때 부모님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따라하며 환호하는거죠.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관점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곳이 국경으로 구별되지 않는 나의 나라인가까지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현화씨는 어릴 적부터 코다들의 수어 교육과 코다 가족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사회 공동체의 출발이 가족이라 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엄마가 밖에서는 수어를 쓰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인천에서 수어를 가르치는 조미혜씨(37)는 어렸을 적 부모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이 같은 마음은 미혜씨 뿐만 아니라 많은 코다들이 겪는 아픈 지점이다.
농인 부모님을 두고 있는 미혜씨는 어렸을 적 부모님과 소통이 부족했던 것이 당시에는 자신이 뜻을 전달해도 부모님이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혜씨는 "어렸을 때 부모님하고 소통이 어려웠어요.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부모님하고 학교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이야기도 다 나누더라고요. 부럽기도 하고 나는 왜 쟤들과 달라야 할까 생각도 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는 제가 어떻게 하더라도 부모님이 다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거죠. 제가 수어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해를 시켜드리지 못했던 것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미혜씨의 어머님은 딸이 손가락질 받거나 눈치를 보는 게 안쓰러워 미혜씨에게 밖에서는 수어를 쓰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수어를 쓰지 못하는 불편함보다 사회적 시선에 혹시라도 딸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혜씨는 오히려 이런한 시선과 부족한 소통 때문에라도 수어를 더 열심히 익혔다. 수어를 정식으로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지만, 농인들이 다니는 교회, 친척, 부모님으로부터 더 악착같이 수어를 배웠다.
미혜씨는 "외국에서는 농인의 직업에 제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부분 농인을 고용하기 꺼려 하죠. 통역사를 둬야 하는 비용 문제도 있겠지만 우선은 꺼려하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농인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잘 보는 사람이라고 인식해 주면 좋겠어요. 수어를 쓰는 농인은 눈이 좋을 수밖에 없어요. 세세한 표정과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다 캐치할 수 있죠. 혹여나 농인들에게 불쾌한 시선이라도 주신다면 이를 더 잘 알아보는 농인들은 더 위축되고 모른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미혜씨는 코다가 우리 사회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농사회와 청사회를 잇는 역할뿐 아니라 다른 장애를 가진 분들의 어려움과 힘든 점도 비장애인보다는 훨씬 더 잘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혜씨 역시 코다들에 대한 수어 교육을 강조한다. 가족에서부터 시작되는 소통이 결국에는 공동체와의 소통으로 확장되고, 그것이 결국 영화 '코다'에서도 말하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기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등록된 농인은 약 40만 명에 이르지만 코다의 규모는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코다들은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들어 수어를 배우거나 부모님 어깨너머로 수어를 익히기도 한다. 근데 이마저도 의지가 있는 자녀들의 이야기이고 현실에서는 농인 육아의 편견 때문에 한 집에서 같이 살지 못하는 가족도 많다.
이 때문에 코다들 사이에서 현실적 어려움은 홀로 극복하거나 비슷한 처지를 알음알음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인 상황이다. 코다들이 어렸을 때부터 수어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과 생계가 어려운 농인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맞춤형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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