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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사월이 가장 잔인하다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4.14 18:39

수정 2022.04.14 19:10

[서초포럼] 사월이 가장 잔인하다고?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메마른 뿌리를 봄비로 흔들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낸다. 차라리 겨울이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으로 땅을 뒤덮어 마른 뿌리로 작은 생명을 키워냈으니. (T S 엘리엇, '황무지, The Wasteland')
1922년 발표된 T S 엘리엇의 이 시는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 서구의 절망감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과 1918년 발생했던 스페인독감으로 수천만명이 목숨을 잃었던 당시의 삶은 그야말로 참혹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시인 엘리엇은 20세기 초 서구는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 인해 인간의 정신상태가 황폐해졌으며, 이 세상은 생명의 잉태가 불가능한 황무지라고 보았다.
정상적이라면 자연은 모든 생명체의 순환과정을 반복하여 봄이 되면 생명을 싹틔우는 희망을 노래한다. 하지만 황무지 상황에서는 봄이 도래해도 탄생, 죽음, 재생의 자연의 순환 이치를 기대하지 못한다. 온갖 재앙으로 인해 희망을 꿈꿀 용기마저 갖지 못하는 인간은 그저 자기 발끝만 바라보며 삶을 지탱하기에 급급하다.

코로나19의 재앙이 전 세계를 휩쓴 지 2년이 훨씬 넘었다. 게다가 국가 이기주의가 빚어낸 폭력이 난무하는 지구적 현실은 20세기 초의 영토팽창에 혈안이 돼 있던 제국주의 갈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보라. 제국주의의 팽창 탐욕은 많은 양민들을 절망 속에 몰아넣고 생명과 인권을 앗아가고 있지 않은가. 20세기 초의 지구처럼 미래의 희망이 사라진 황무지와 흡사하다.

엊그제 봄비가 내려 메마른 산야를 적셔주었다. 이제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록색의 어여쁜 새싹들이 자태를 뽐내기 시작할 것이다. 벚나무, 목련,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돌단풍, 생강나무 등등 수많은 봄꽃들이 화사하게 그리고 단아하게 자태를 뽐내며 겨울의 인고를 치른 생명의 숭고함을 알리고 있다. 멀리서 쑥국새가 쑥국쑥국, 뻐꾸기는 뻐꾹뻐꾹, 꾀꼬리는 꾀꼴꾀꼴 하며 울어댄다. 수컷들의 이 현란한 노랫소리는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암컷을 유혹하는 미래를 향한 사랑의 노래다.

마침 코로나 감염 추세가 정점을 넘어섰다는 얘기가 들린다.
우크라이나의 참상도 빨리 끝나기를 기대해본다. 다디단 봄비가 우리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준 것처럼, 화합과 통합을 주창하는 새 정부에도 희망을 걸어본다.
국민의 기대와 염원이 '행여나'에서 '역시나'로 끝나지 않기를! 밤이 지나면 아침이 다가오고, 겨울 다음에는 어김없이 봄이 오듯이 우리도 자연의 순환절차에 동참하여 미래와 생명을 노래하자. 온갖 갈등과 반목 그리고 비극적 사건들로 점철된 이 지구가 증오와 절망으로 "죽은 나무로 가득한 불모의 땅"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우리에게는 꿈꿀 자유와 누릴 권리가 있다.

변창구 경희사이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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