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전에 녹음했던 음반을 이제서야 마주하게 되니 낯설면서도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익숙하고 행복하네요."
피아니스트 조재혁(52)이 18일 새로운 앨범을 들고 대중 앞에 나섰다. 앨범의 타이틀은 '발라드'. 쇼팽의 발라드 네 곡과 피아노 소나타 3번이 담긴 앨범으로 그의 다섯번째 음반인 동시에 세번째 인터내셔널 음반이며 두번째 피아노 솔로 앨범이다. 2년 전 피아니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로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줬던 그가 정통 피아노 앨범을 선보이는 것은 5년만이다. 조재혁은 이번 앨범 발매를 기념해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제주도와 천안, 진주, 여수, 서울, 울산, 전주, 강릉 등 8개 도시에서 기념 리사이틀을 펼친다.
조재혁 신보 '쇼팽 발라드' / 목프로덕션 제공
이를 기념해 앨범 발매일인 18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조재혁은 "사실 이번 음반의 녹음은 2019년에 진행했다"며 "스스로도 잊고 있다가 음반 발매가 임박하면서 그때 녹음했던 연주를 다시 들었다.
부끄럽고 쑥스럽기도 했지만 음반 작업을 했던 때의 기억과 배움을 떠올리며 기록으로 남기는 앨범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쇼팽의 피아노곡을 녹음한다고 하면 프렐류드나 스케르초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앨범에는 조금은 희귀한 '발라드'를 담았다. 피아노 소나타도 3번을 선택했다. 조재혁은 "발라드 4곡을 한 앨범에 담지 않는 이유가 곡의 색이 너무 진해서이기도 한데 왠지 모르게 어릴적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애착이 갔고 제 음반 콜렉션에 담게 됐다"고 설명했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18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홀에서 '쇼팽' 음반 발매 및 전국 투어 리사이틀 기자간담회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천명이 훌쩍 넘은 나이에 앨범 다섯장은 그리 많지 않은 숫자다. 심지어 조재혁은 이 앨범들을 최근 5~10년새 내놨다. 일반적인 피아니스트의 생애 주기가 20대 콩쿠르 입상 이후 활발한 연주활동 뒤 30대에 국내로 돌아와 교편을 잡기 시작하는 것과 달리 그의 커리어는 역주행이다. 젊은 시절보다 최근 들어 전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의 협연 요청이 더 많다. 조재혁은 "한 연주자의 커리어는 계획에 따라 풀리지 않고 인생에서 비슷한 시기에 주어지지도 않음을 깨닫는다"며 "어떤 연주자는 신동으로 등장해 금방 사라지기도 하고 등용문과 같은 콩쿠르에서 입상해 커리어를 끌어나가는 사람도 있고 저같은 사람도 있다"고 입을 뗐다. 조재혁은 "저는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른채 유학을 가서 주어진 상황을 그저 묵묵히 헤쳐나간 것 같다"며 "그 과정에서 인생의 쓴맛도 많이 봤다. 콩쿠르에서 무수하게 떨어지면서 20대 후반에는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어 회의감이 찾아왔고 음악을 던진 적도 있었다. 피아노를 잠시 놓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LSAT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머릿속에 계속해서 '음악은 어떻게 하지'란 질문이 맴돌았고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다시 음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재혁은 "그러면서 소위 배짱이란 게 생긴 것 같다. 이전에 남을 위해 음악을 했다면 그때부터 나 자신을 위해 음악을 하게 됐고 그러니 신기하게 사람들이 귀를 기울여줬다. 이후 콩쿠르에서 입상도 하게 됐다.
저는 결혼도 음반발매도 남들보다 늦은 편이었지만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온 지금의 과정들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재혁은 "저를 포함한 청중이 오늘도 연주회장을 찾고 음반을 고르는 건 종이 악보로 전해지는 작곡가의 의도가 연주자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연주자가 악보를 공부하고 소리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그 연주자 특유의 개성이 담기는데 사람마다 외모도 다 다르듯 음악적 개성이 다 다르기에 오늘도 이 작품들을 연주하며 듣는 이유가 생긴다.
이번 음반과 공연에 저만의 개성을 입힌 쇼팽을 구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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