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대 영국과 아편전쟁 이후 상하이는 상전벽해한다. 서구 열강은 홍콩을 얻었고 주룽반도, 광저우를 드나들었다. 대륙에 눈 뜨면서 상하이를 발견했다. 장강을 따라 내륙 깊숙한 곳으로 뻗을 수 있는 급소가 상하이였다. 시내 우측 황푸강변 와이탄엔 외국인들이 넘쳐났다. 기세등등했던 이들은 와이탄 황푸공원 입구에 '중국인과 개는 출입금지' 푯말을 내걸었다.
굴욕의 역사만 있는 건 아니다. 10리에 걸쳐 서양 상점이 늘어선 곳이라는 의미의 '십리양장(十里洋場)'이 이를 말해준다. 수많은 서양 문물이 거리를 메웠다. '동양의 파리' '극동의 진주'로 불리기 시작했다. 열강의 자본이 대거 몰려 이미 1930년대 세계 금융가 한자리를 차지했다.
진정한 부흥은 1990년대로 봐야 한다. 덩샤오핑의 그 유명한 남순강화가 발표되면서 개혁의 물결은 새로운 고지를 향해갔다. 덩샤오핑은 당시 권력의 정점이던 장쩌민을 비롯한 상하이방에게 개혁개방 후임을 맡긴다. 지금의 G2 경제대국 중국을 만든 주역들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구 2500만명의 거대도시 상하이가 20여일째 봉쇄됐다. 외신은 뉴욕 인구의 3배이며, 스웨덴보다 큰 경제규모의 도시 봉쇄로 중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봉쇄 여파가 반영될 이달 이후 중국 경제지표에 대한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상하이 시민들은 마비된 도시에서 연일 고통을 호소한다. 그런데도 시진핑 국가주석이 이끄는 정부는 꿈쩍도 않는다. 우리나라나 미국 같은 서방국이라면 난리가 났을 거다. 하여튼 중국은 독특한 나라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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