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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사(寺)에 뜬 '꽃무늬 넥타이'…새바람 예고한 이창용

뉴스1

입력 2022.04.21 05:31

수정 2022.04.21 09:27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로서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신임 총재는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 받을 예정이며, 이날부터 공식 임기를 시작한다. (사진=공동취재단) 2022.4.1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로서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 신임 총재는 21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 받을 예정이며, 이날부터 공식 임기를 시작한다. (사진=공동취재단) 2022.4.1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사진=공동취재단) 2022.4.1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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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동취재단) 2022.4.19/뉴스1 © News1 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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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꽃무늬 넥타이'

21일 임기를 시작하는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가 청와대 임명에 앞서 지난 19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청문회장에 후보자 자격으로 들어서자 좌중의 시선은 곧 넥타이에 집중됐다. 한은의 국정감사 기관인 국회에서, 그것도 인사 검증을 벼르는 국회의원들과의 첫 공식 대면 자리에서 이 총재는 총천연색 알록달록한, 그래서 멀리서 보면 마치 꽃무늬처럼 보이는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이는 국정감사 자리에서 늘 단색이나 잔잔한 격자무늬 넥타이를 맸던 '정통 한은맨' 이주열 한은 전 총재와도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통상 청문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넥타이 색깔을 단색으로 매서 의지를 표현하기도 하는데 외국에 오래 계셔서 그런지…. '꽃무늬 넥타이'입니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넥타이인가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결국 이 총재에게 넥타이 질문을 던졌다.
청문회장에선 잠시 술렁임과 함께 웃음이 일었다. 이 총재는 황급히 고개를 수그려 자신의 넥타이를 보더니 "제가, 집사람이 줘서 잘 쓰는 넥타이인데 아무 생각 없이…"라고 답하며 멋쩍은 듯 마스크를 매만졌다. 유 의원은 표정 변화 없이 "보기 좋습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하며 질의를 이어갔다. 청문회장 분위기는 다시금 착 가라앉았다.

넥타이와 마찬가지로 이 총재의 경력은 화려하다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두드러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60년생인 그는 서울대 경제학 학사, 하버드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으며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 단장, 아시아개발은행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쳤다. 2014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에 발탁돼 최근까지 활동했다.

기재위가 이 총재에 대한 인사청문회 직후 저녁 6시도 채 지나지 않아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빠르게 채택한 배경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 총재의 역량에 대해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경쾌한' 넥타이와 달리 한은의 수장으로서 이 총재가 헤쳐 나가야 할 앞날은 결코 녹록지 않다. 세계 경제에는 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경고음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5%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1981년 12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으며, 3월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4.1%로 10년3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경기는 둔화 조짐이다. 한은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로 지난 2월 3.0%를 제시했다가 불과 두 달 만인 이달 들어 3.0%를 하회할 거란 수정 전망을 내놨다.

그의 첫 일성에서도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가 읽힌다. 그는 지난달 청와대로부터 차기 한은 총재로 지명된 뒤 소감을 발표하고 "성장, 물가 그리고 금융안정을 어떻게 균형 있게 고려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영해 나갈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했다.

인사청문회에선 "앞으로 몇 년간은 인플레이션과 싸워야 할 것"이라면서 "물가 상승의 심리가 지금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좀 인기는 없더라도 시그널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올라가지 않는 데 전념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총재가 한은의 수장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수년에 걸친 물가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셈이다.

한은의 내부 상황 역시 그의 총천연색 넥타이와는 거리가 멀다. 한은은 지난 2020년 맥킨지앤컴퍼니로부터 받은 컨설팅 결과 '조직 건강도'에 있어 저조한 평점을 받았다. 특히나 20·30대 직원들 사이에서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에 가로막혀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젊은 층이 숨막힐 정도로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조용한 절간에 빗대어 '한은사(寺)'라는 웃지 못할 별명도 생겼다. 독립기관으로서 외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통화정책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함에도 정부 정책에 있어선 비판이나 반론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을 정도로 숨죽여 산다는 비아냥도 섞여 있었다.

"왜 한은사라고 얘기할 정도로 고요한 구름 위에서, 진짜 왜 그런 행태를 보여야 하냐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한은도 국민 경제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시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셔야 된다는 그런 말씀입니다…정부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렇게, 이렇게 해야 됩니다'라고 의견을 제시하는 게 저는 맞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류성걸 국민의힘 의원은 평상시 한은의 행태가 답답했던 듯 인사청문회장에서 이 총재를 향해 지적을 쏟아냈다. 이에 이 총재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총재는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을 통해 한은을 두고 "통화금융정책의 중추일 뿐 아니라 우리 경제를 가장 잘 아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싱크탱크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인사검증대를 통과한 이 총재는 알록달록한 '꽃무늬 넥타이'를 매고 한은에 '새바람'을 예고한 채 국회 밖을 향해 나아갔다.
21일 임기를 시작하는 이 총재가 마주해야 할 각종 난제처럼 국회 밖에는 저녁의 어두움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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