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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땅 도착했지만"…광주 정착 우크라 출신 고려인들 후유증 호소

뉴시스

입력 2022.04.21 14:18

수정 2022.04.21 14:18

기사내용 요약
청각 장애·불안 증세·지병 등…의료보험 적용은 여섯 달 뒤에나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전란을 피해 한국에 입국한 고려인들이 전쟁 후유증 등 이상증세를 호소하는 가운데 20일 오후 광주 광산구 고려인광주진료소에서 고려인 동포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광주고려인마을 제공) 2022.04.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전란을 피해 한국에 입국한 고려인들이 전쟁 후유증 등 이상증세를 호소하는 가운데 20일 오후 광주 광산구 고려인광주진료소에서 고려인 동포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 광주고려인마을 제공) 2022.04.21.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딸에게 그나마 남아있던 청력이 전쟁 후유증으로 모두 사라졌어요. 빈털터리로 한국에 왔는데 딸은 이제 어떻게 치료받아야 하나요"

전쟁의 포화를 피해 한국에 온 우크라이나 출신 고려인 동포들이 현지에서 겪은 전쟁 후유증과 지병 악화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갑작스레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이들로서는 의료비 마련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21일 광주고려인마을 등에 따르면 지난 20일 50여 명의 우크라 출신 고려인이 고려인광주진료소를 찾아 전쟁을 겪으며 생긴 후유증과 지병을 진단받았다. 진료에서는 청력 상실, 스트레스성 불안, 지병 악화 등을 호소한 고려인들의 사례가 이어졌다.


이중 안옐레나(42·여)씨는 진단 결과 딸이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안씨는 "현지에서 여러 차례 터진 미사일의 폭음 탓에 딸이 청력을 잃었다"며 "전쟁 전에는 작은 소리라도 들을 수 있었지만, 방공호 대피 과정에 청력을 끝내 잃고 말았다. 목숨은 부지했지만 남은 삶은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피난 도중 약을 구하지 못했던 고혈압 환자 박알렉산드르(52)씨는 "한 달여 피난민 신세 동안 약을 구하지 못해 두통에 시달려왔다"며 "이제라도 약을 구할 수 있게 돼 다행이지만 함께 온 다른 동포들은 사정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증세와 안면 뒤틀림, 손떨림과 불면증 등을 호소하는 고려인들의 사례도 다수였다.

문제는 전란을 피해 갓 입국한 이들이 현재 국내 의료보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8일 입국한 박바딤(69)씨의 경우 최근 광산구 한 중형 병원에서 외국인 등록을 위한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폐암이 의심된다'는 진단 소견에 따라 지역 대학 병원으로 급히 전원됐다. 암이 최종 확인될 경우 적지 않은 치료비가 필요하지만 전란 속 급히 몸만 피신해온 터라 큰 돈을 구할 길이 현재로써는 전무하다.

의료보험이 이들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현행법상 외국인 입국자 대다수의 경우 6개월의 국내 체류 기간을 넘겨야만 국내 의료보험 가입 대상자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비전문취업 비자(E-9)와 영주권 비자(F-5) 취득자는 입국 당일부터 의료보험에 가입되지만 최근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 가운데 해당 비자를 취득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피난 고려인 대다수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당장 치료가 급한 이들은 큰 경제적 부담을 떠안아야 할 상황이다.

고려인마을은 이들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에 나서고 있다.


신조야 고려인마을 대표는 "전쟁을 피했다는 안도의 한숨이 깊은 슬픔으로 변하고 있다"며 "의료 체계를 개선, 이들이 원활하게 치료 받을 길을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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