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봄
봄이 오고 꽃이 핀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데 어찌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7000km 넘게 떨어진 낯선 타국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쟁이지만, 늘 그렇듯이 다치고 죽어 나가는 일반 국민들의 모습에서 안쓰러움과 깊은 슬픔을 느끼게 된다.
우크라이나는 외세의 침탈과 전쟁을 가장 많이 겪은 나라 중 하나다. 그리고, 1991년 소비에트연방 해체 이후 뒤늦게 독립을 이룬 나라이기도 하다.
유럽의 곡창지대이자 산업적 잠재력이 풍부한 철광석 산지여서 그만큼 탐내는 이웃들이 많았고, 그래서 수많은 호전적인 민족들이 거쳐간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어느 작가는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를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땅 중 No. 1’ 이라고 평했다.
역사책을 뒤척여 보니, 우리 못지않게 굴곡진 역사를 살아 온 나라다. 특히나, 1932~33년의 대기근과 관련된 우크라이나의 슬픈 과거를 읽다가는 기함이 나왔다.
우크라이나 대기근은 철저히 ‘정치적’인 기근이었다. 350만명이 아사하고 500만명의 인구가 감소하는 희대의 비극이었지만, 그럴 만한 흉작이나 이상기온은 없었다. 그저 소련이 집단 농장 제도를 밀어붙였을 뿐이었다.
자영농의 자유주의적 기질을 싫어한 스탈린은 농민을 노동자처럼 만들고자 했다. 농민들은 집단농장에 갇히거나 저항했다. 사유(私有)를 부정하니 중요한 농사 수단인 가축들은 모두 팔거나 죽여 버렸다. 소련은 파종할 씨앗까지 압수했다. 반발하는 농장이나 마을은 통째로 블랙리스트에 올려 식량 공급을 차단했고, 체포·투옥, 강제이주, 처형 등으로 탄압했다.
이 모든 것들은 생산량 급감으로 이어졌고 소련의 징발량은 터무니없이 높아서 이를 채우고 나면 농민들조차 끼니를 해결할 식량이 부족했다. 수백만명의 우크라이나인이 기아로 사망하는 동안 스탈린은 남아도는 곡물을 해외에 수출했고 외국의 원조 제안도 거절했다고 한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부차, 마리오폴 등에서 러시아의 ‘집단 학살’이 다시금 반복되고 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들도 못 가지게 하겠다’는 식의 절멸(絶滅)전쟁이 21세기에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변 국가들의 이기와 탐욕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다. 더구나 주변 국가들이 세계적인 열강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우방 국가들이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 싸워줄 수는 없다.
자유와 평화, 주권과 자립을 잃은 사람들이 이를 되찾기를 갈망하는 마음은 늘 봄에 비유돼 왔다. ‘빼앗긴 들에 봄은 오는가’ 라는 시도 있지 않는가.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에도, 그리고 수많은 평화를 잃어버린 땅에도 진정한 평화의 봄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화 컴플위 자문위원 김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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