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 인력·예산 확대하고 제도·기술 도입 박차
1분기 오히려 사망자 늘어, 사고예방 효과 '의문'
"안전 경각심 높인점 긍정적…모호한 법에 혼란"
"기업만 옥죄지 말고 근로자 동참할 법 만들어야"
"중기 안전인력 구인난 심각…경영악화 우려도"
30일 건설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올해 건설업계의 최대 화두는 '안전'이다. 지난 1월11일 광주광역시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외벽이 붕괴하는 사고로 6명의 근로자가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데 이어 지난 1월27일부터 건설현장 안전 의무를 대폭 강화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됐기 때문이다.
작년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근로자수가 417명에 달했다. 작년에 산업재해로 생긴 사망자 828명 중 절반 이상이 건설 현장에서 발생하는 만큼 건설사들이 중대재해법의 주요 타깃인 셈이다.
이에 건설사들은 안전 관련 조직과 인력을 충원하고 관련 예산을 대폭 확대하며 안전 관리체계를 보강하는 데 안간힘을 썼다. 구체적으로 근로자 안전관리 인센티브제, 현장 의견 수렴 시스템 구축, 협력사 안전 관리 지원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고위험 현장에 드론이나 로봇 투입 등 신기술을 통해 사고 예방에 집중해 왔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법정 안전관리비 외에 안전강화비를 신규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국내 건설현장은 산업안전보건법의 공사유형별 안전관리비 계상기준에 따라 공사 금액의 1.20~3.43% 범위에서 안전관리비를 편성해 운영하고 있는데 삼성물산은 안전관리비 외에 현장의 자체 판단으로 안전을 위한 추가 투자가 필요할 경우 안전강화비를 활용해 즉시 조치하도록 했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안전관리비가 총 공사금액의 2% 정도 되는데 삼성물산은 이와 별도로 본사 차원에서 3%를 안전강화비 명목으로 내려줘서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며 "굉장히 큰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은 안전에 대한 문제가 생겼거나 위험요인을 발견했을 때 신고를 하면 안전 포인트를 지급해 근로자 스스로 안전의식을 높이도록 하는 '안전지갑제도'를 도입했다. 또 협력사의 안전관리 역량 제고를 위해 안전관리비 50% 선지급 제도를 도입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즉각적인 안전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건설현장 안전관리 시스템도 도입했다.
DL이앤씨는 사고 예방을 목적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해 기존에 발생한 재해를 유형별로 분석해 대응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설계와 자재, 시공 등 건축물과 관련한 모든 정보를 3차원 입체영상으로 구현하는 건설정보모델링(BIM) 기술도 활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이 건설사들의 안전 관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어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애매모호한 법 규정에 현장 혼란이 상당하다고 지적한다. 또 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아예 중대재해법 대처에 손은 상태라고 전문가들은 입은 모은다.
대한건설협회 한상준 기술안전실 부장은 "안전 관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분명히 있지만 대형업체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손 놓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100일을 놓고 판단하기 성급한 면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바닥으로부터의 변화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강력한 처벌을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건설현장 안전사고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중대재해법이 시행에 들어간 올해 1분기(1~3월)에 건설사고 사망자가 55명 발생해 지난해 1분기 사망자수인 49명보다 오히려 더 늘어났다. 건설 현장의 안전조치가 관련 법 시행 이후에도 개선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셈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고의 속성 자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발생하는 만큼 아무리 처벌을 세게 해도 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모든 협력사의 안전 조치와 현장 감독까지 세세하게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법만 강화해서 사망사고를 줄이겠다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사고"라고 말했다.
중대재해법과 시행령이 지나치게 불명확하거나 해석이 모호한 부분이 많아 건설 현장 혼란이 상당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시도 최근 해석이 모호한 부분을 구체화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장은 "법 규정이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업체가 많다"라며 "법을 만든 사람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할 정도이니 지켜야 할 사람은 어떻게 알겠느냐. 정부가 '덫을 쳐놓고 걸려들기만 바라는 것'과 다름 없다"고 지적했다. 또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기업만 옥죄는 법이 아니라 근로자들도 동참시킬 수 있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중소 건설사들은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과다한 행정 업무 증가와 함께 안전인력 구인에도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65.3%, 중견기업 71.4%는 최근 1년간 안전관리자 취업 지원자 수가 줄었다고 답했다. 주된 원인은 '대형 건설사 채용 증가', '높은 업무 강도와 형사처벌 위험성 등에 따른 기피' 등이다.
건설산업연구원 최수영 연구위원은 "최근 건설산업에서는 안전관리자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중소 건설사의 안전관리자 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안전관리자 수요 공급 불균형이 심각해질 경우 안전관리자의 인건비는 상승할 수 밖에 없고, 사업장의 안전관리비용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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