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PPA 허용 확대해 독점 판매구조 개방"
"한전 민영화 아냐"…시장 자율화 가능성 낮아
PPA 활성화 통한 소비 선택권 확대 취지인 듯
추가 시장 열려도 연료비에 가격 인하 어려워
[서울=뉴시스] 고은결 기자 =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가 최근 "한국전력의 독점 판매 구조를 점진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향후 전기요금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일부에서는 인수위의 '독점 구조 개방'이라는 표현을 놓고 한전의 민영화를 시사하는 것 아니냐며, 공공재인 전기의 가격이 치솟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인수위는 한전의 민영화는 논의하지 않았다며, 전력 시장 자유화에 대한 우려를 차단했다.
반대로 전력 판매 구조 개방에 따른 경쟁 촉진으로 전기요금이 인하될 가능성도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유가 등 전력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인상 압박이 크다는 점에서다.
인수위는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전력구매계약(PPA) 허용 범위 확대 등으로 한국전력의 독점 판매 구조를 점차 허물고, 다양한 수요 관리 서비스 기업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경쟁과 시장 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 구조 확립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런 발표 내용에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가 한전의 민영화에 나서는 것 아니냐'라는 관측이 나왔다. 공기업인 한전을 민영화하면, 공공재 성격으로 관리되고 있는 전기가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요금이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했다.
논란이 커지자 인수위는 다음날 '한전의 민영화를 논의한 적 없다'는 입장을 내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 '새롭고 다양한 전력 서비스 사업자가 등장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전력 시장이 경쟁적 시장 구조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현행 전기사업법상 한전은 전기 판매·송배전망 독점 사업자다.
다만 신재생공급사업자에 한해 '직접 PPA'를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전력 판매 시장은 재생에너지 공급사업자에 한해 일부 개방된 상태다.
직접 PPA는 한전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발전사와 사용자가 직접 전력을 거래하는 방식이다. 이에 앞서 도입된 '제3자 PPA'는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한전의 중개를 거쳐 전기 사용자와 전력 구매 계약을 맺을 수 있게 한 제도다.
이같은 PPA 제도는 재생에너지 구매 실적을 늘리려는 기업의 'RE100'(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 이행 수단 중 하나다.
이에 기존 PPA 시장의 활성화는 재생에너지의 수요·공급 확대를 위한 차원으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는 견해가 상당하다.
박종배 건국대 교수는 "인수위가 언급한 PPA 허용 범위 확대는 직접적인 민영화와 상관없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겠다는 수준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기후·환경단체 플랜1.5의 권경락 활동가는 "현재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은 대부분 한전의 발전자회사와 민간사업자가 공동 출자해 진행 중으로, 기존 PPA 시장 확대는 민영화와 관계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인수위가 재생에너지 외의 발전원을 활용한 전력 판매 시장을 개방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권 활동가는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는 민자 발전 사업자가 많다"며 "그런 민자 발전사들이 한전을 통하지 않고 기업들에 직접 공급한다면 (전력 산업의) 민영화라는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산업용 소비자가 PPA 시장에 참여하는 이유는 RE100 이행 등을 위해서인데, 화력 발전으로 만든 전기까지 PPA 계약에 따른 망 이용료 등을 얹어가며 구매할 요인이 적다는 분석도 있다.
만약 PPA가 허용된 발전원이 늘고, 참여 사업자가 늘어 가격 경쟁이 벌어져도 전력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은 작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력 생산에 필요한 연료비가 오르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정연제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아무리 사업자가 많이 들어와도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이 많이 오르면 전기료가 오를 수밖에 없다"며 "전기 생산 과정에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단순히 시장 구조 개방으로 전기요금을 낮출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도 전기요금은 원가를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물가 상승률 등을 우려해 인상을 보류하며, 연료비 상승분이 요금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전이 전력 생산·공급에 쓴 비용 중 판매 수입으로 회수한 비율인 '전기요금 총괄원가 회수율'은 85.9%에 그쳤다. 수치가 100%를 밑돌았다는 것은 그만큼 밑지는 장사를 했다는 뜻이다.
이에 인수위가 전기요금에 대한 '원가주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전력 판매 구조 개방보다는 원가 반영에 따른 요금 변동 가능성에 시선이 쏠리는 분위기다.
이 밖에 인수위가 언급한 '다양한 수요 관리 서비스 기업을 키우겠다'는 방침은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전력 수요 관리(DR·Demand Response)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박 교수는 "인수위가 에너지를 적게 쓰는 수요 관리 사업자를 육성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며 "이는 한전 측에 (전력 판매) 경쟁 압박이 가해지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요를 절감하는 사업자들을 늘리고, 그다음에 장기적으로 (PPA) 사업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시장 민영화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수위 발표에 따라 PPA 시장의 활성화와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산업계 안팎에서는 재생에너지 PPA 계약에 중개 수수료, 망 이용료 등 부대 비용이 포함돼 수요 기업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PPA 계약을 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중복 비용 부담이 있어, RE100 등에 대한 참여가 더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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