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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어제 응원봉 팔다 오늘은 태극기… 사람 많은 쪽이 내 일터"

김동규 기자,

최승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4.12.29 18:56

수정 2024.12.29 18:56

집회장에 자리 편 노점 '웃픈 특수'
지자체 연말행사 등 축소 분위기
갈 곳 잃은 노점상들 재고 쌓일라
정치 관심 없어도 뉴스 매일 확인
장사 될만한 곳 찾아 품목도 바꿔
"내가 지지하는 쪽 아니라도 무관"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만난 노점상 A씨. 태극기와 성조기 등 국기를 판매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만난 노점상 A씨. 태극기와 성조기 등 국기를 판매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지난 21일 광화문 앞에서 만난 노점상들. 사진=김동규 기자
지난 21일 광화문 앞에서 만난 노점상들. 사진=김동규 기자

"요즘 사람들이 집회에서 응원봉을 찾는다고 하길래 임영웅 콘서트에서 팔던 응원봉 가져왔어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앞 공터에서 응원봉을 판매하고 있는 기모씨(77)은 이같이 말했다. 기씨는 장바구니 캐리어에 응원봉과 집회용 방석, 우비 등을 담은 채 집회장 이곳저곳을 누비고 있었다. 그는 약 40년 동안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노점을 펼치고 있다. 그는 "요즘 나라가 시끄러워서 행사가 많이 취소돼 먹고살기가 힘들다"며 "그래도 여기서 장사를 할 수 있어 다행 아니겠냐"고 말했다.

■불경기에 집회장 찾는 노점상

12·3 비상계엄 사태로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국면이 접어들면서 탄핵 찬성·반대 집회가 주말마다 이어지고 있다.
이에 '갈 곳 잃은' 노점상들도 하나 둘 집회장을 찾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등이 주최하는 굵직굵직한 행사들이 연달아 취소되면서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정치에 큰 관심이 없지만, 생계를 위해 매일 뉴스를 확인한다고 밝혔다.

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자체의 각종 행사가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자신들의 연말 대표 행사인 '윈터페스타'의 개막식을 생략했다. 부산시는 '해운대 빛 축제'의 점등식을 취소했다.

지자체의 행사 취소로 막다른 길에 몰린 이들은 노점상들이다.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이들의 특성상 행사 취소는 장사할 공간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노점상들이 찾은 대안은 탄핵 찬성·반대 집회장이다. 특히 이번부터는 응원봉 등 아이돌 콘서트장에서 볼만한 집기류들이 집회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에 노점상들의 판로가 더 확대되는 모양새다.

지난 21일 광화문 월대 앞에서 만난 이모씨(60) 역시 발광다이오드(LED) 촛불과 함께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팔고 있었다. 이씨는 "아이돌 콘서트장 인근에서 팔던 응원봉을 로고만 '윤석열 탄핵'으로 바꿔 팔고 있다"며 "콘서트장에서 못 판 응원봉을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팔 수 있으니 좋다"고 말했다.

1인용 돗자리와 태극기 배지 등 전통적으로 집회에 등장하는 잡화들도 노점상들의 주요 상품으로 자리한다. 동화면세점 인근 탄핵 반대 집회장에서 만난 노점상 A씨(70)은 손으로 흔들 수 있는 태극기와 성조기와 각종 배지와 견장 등을 팔기 위해 이날 이곳을 찾았다. 그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장사를 하며 벌어먹는다"며 "집회 등 이런 행사가 있어야 장사가 잘 된다"고 말했다.

■정치 성향 보단 생업

생업 앞에서 정치 성향은 뒷순위로 밀린다. 앞서 탄핵 집회에서 만난 이씨는 자신의 정치 성향을 진보와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그는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국민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래도 여기 온 사람들도 자신들이 다 하지 못한 말이 있어 오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또 다른 노점상 박모씨(65) 역시 자신의 정치 성향이 원래 보수에 가깝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보수 쪽의 구매력보다 진보 쪽의 구매력이 더 좋아 이곳에서 장사하고 있다"면서 "보수 쪽은 태극기만 흔들어대다 보니 소득이 별로 없다"고 전했다.


이들은 인터넷 기사와 텔레비전 뉴스 등을 통해 다음 행선지를 정한다고 말했다. 이번달 초까지는 여의도에서 장사를 했다고 임모씨(75)는 "집회장소를 찾기 위해 인터넷 뉴스를 찾아본다"고 말했다.
상인들끼리의 네트워크가 있냐는 본지 기자의 질문에는 "별다른 네트워크는 없는데, 저기서 봤던 사람을 여기서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답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최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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