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과천=강근주 기자】 오는 5월15일 서울경마공원에서 한국경마 최고의 하이라이트 경주 중 하나인 ‘코리안더비(Derby, GI, 1800m)가 개최된다. 올해 25회를 맞이하는 코리안더비는 국산 3세마 중 최고 실력자를 가리는 자리다. 연말 열릴 ‘대통령배’나 ‘그랑프리’ 경주가 연령이나 산지 제한이 없는데 비해 코리안더비는 연령(3세)과 산지(국내산)가 철저하게 제한돼 말 인생에서 딱 한 번 출전 기회만 주어진다. 제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3세마가 아니면 도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데뷔 이후 착실하게 실력을 쌓아온 경주마 마주에게는 대통령배나 그랑프리와 똑같은 국내대회 최고 총상금 8억원이 걸린 꿈의 무대이기도 하다. 상금 이전에 혈통 스포츠인 경마에서 새로운 명마를 탄생이란 명예와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더비 우승마 마주가 되고 싶다는 열망은 공연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축구나 야구에서도 흔히 라이벌 빅 매치를 가리켜 ‘더비’란 말을 쓴다. 그런데 더비는 1789년 영국 더비 백작이 3세마들을 모아 개최한 경마대회 ‘엡섬 더비(Epsom Derby)’에서 비롯된 용어다. ‘단 한 번뿐(Only once)’이란 단어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관중은 더비에 열광했고, 제1차, 2차 세계대전도 질주를 멈추지 못했다.
미국은 1875년 이를 모방해 매해 5월 우승마에게 장미 화환을 목에 걸어주는 켄터키더비(Kentucky Derby)를 만들었고, 이를 포함한 3대 주요 경기를 모두 우승하면 트리플크라운(Triple Crown)이란 명예를 부여했다. 한국 역시 코리안더비와 KRA컵마일(GⅡ, 1600m),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GⅡ, 2000m)를 모두 석권하면 ‘삼관마’라는 영예를 얻는다.
한국마사회는 올해 한국경마 100년을 맞이해 코리안더비를 더 특별하게 채우기 위해 준비해왔다. 장거리 최고 국산마를 가리는 대통령배, 국산-외산 통합 최강마를 가리는 그랑프리와 함께 한국경마 3대 이벤트로 코리안더비 위상을 확실히 세운다는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코리안더비 공식 엠블럼 발표에 이어 대회 역사와 권위를 나타내는 특별한 트로피가 경주 당일 베일을 벗는다. 일명 ‘코리안더비 마상배’라는 명칭의 우승컵으로, 고대부터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말 위에서 왕에게 하사주를 받았다는 ‘마상배’를 모티프로 했다. 말박물관과 최용훈 작가가 2019년 ‘그랑프리 마상배’에 이어 두 번째로 공동 디자인한 아름다운 트로피로 말과 인간을 연결하는 의미의 재갈 4조가 컵과 좌대를 연결하고 편자가 하부에 장식된 점은 닮은꼴이다.
코리안더비 마상배 역시 말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 청자마상배 중 하나를 본떴다. 18K로 도금된 준비해오컵 입 부분은 8개 꽃잎 모양이며 컵 정면에 훈민정음체로 ‘코리안더비’라는 명칭이 왕관을 쓰고 있다. 양 측면에는 국산 3세마를 상징하는 무궁화 세 송이가 아름답게 부조돼 있다. 월드컵 트로피처럼 세레모니를 위한 대형 컵 외에 생산자와 마주, 조교사, 기수에게도 축소된 같은 모양 트로피가 각각 수여된다.
1898년 훈련원 광장(구 동대문운동장)에서 나귀경주로 시작한 한국 경마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중 군마 지원이란 혹독한 시련을 딛고 성장해왔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 유전체 기반기술을 바탕으로 선발한 경주마가 미국 최고 연도대표마를 뽑는 ‘이클립스 어워즈’에서 수상하며 선진 경마를 향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정기환 한국마사회장은 6일 “한국경마 100년을 맞이하며 구름 같은 관중이 경마장에 몰려들어 신나게 경마를 즐겼다는 백여 년 전 신문기사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도 미국 켄터키더비처럼, 또 그 옛날 국민을 신나고 설레게 했던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봄날의 코리안더비를 준비했다. 많은 분이 방문해 새롭게 제작된 코리안더비 트로피가 국내 최고 3세마에게 수여되는 순간을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25회 코리안더비는 오는 15일 오후 4시20분 제8경주로 서울경마공원에서 개최되며 가수와 마칭밴드 공연, 추억의 뽑기 게임, 푸드트럭 운영 등 다채로운 행사가 함께 진행된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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