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책 한 권이 최근 출간됐다. '아시아의 피터 드러커'라는 별명을 가진 일본 경영학자 노나카 이쿠지로 등이 쓴 '지략의 본질'이다. '전쟁을 통해 배우는 역전과 승리의 역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의 두번째 챕터에 예의 U보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들은 '승리의 주역'이었던 U보트가 어쩌다 '실패의 상징'이 되었는지 집중 탐구한다.
'해저의 암살자'로 불리는 U보트는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혁혁한 공을 세운 독일의 비밀병기였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서 1158척을 건조해 5150척의 연합군 군함 및 상선을 격침했다. 물 위와 아래를 자유로이 오가며 이리떼처럼 달려드는 U보트의 공격에 연합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전쟁 중 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존재는 U보트였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엄살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U보트의 전성기는 길게 잡아봐야 1943년 초까지다. 그해 3월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을 중심으로 한 영국 암호해독반의 에니그마(독일군 암호체계·그리스어로 수수께끼라는 뜻) 해독 이후 U보트는 무용지물이 된다. 게다가 뛰어난 대잠전력을 보유한 미 해군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면서 U보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고철 덩어리가 되어 간다. 처칠마저도 떨게 했던 U보트의 실패는 그렇게 갑자기 찾아왔다.
세계시장을 호령했던 코닥이나 야후, 노키아 등의 몰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던 신기술을 바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한순간 몰락했다. '지략의 본질'을 공동집필한 저자들은 '성공했던 경험의 과잉 적용'이라는 개념에서 실패의 원인을 찾는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에 영원한 강자란 없다. 특히 요즘 같은 초스피드 시대엔 한순간의 안일함이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좀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제 막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담당자들도 이런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일본 통일을 눈앞에 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한순간 몰락했고, 중국 본토를 거의 점령했던 장제스도 결국 대만으로 쫓겨났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촛불민심을 등에 업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도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성공과 실패는 한끗 차이다. U보트의 몰락이 그런 단순한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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