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화가 포 킴(김보현, 1917~2014)은 그가 말년에 남긴 그림을 통해 세상을 용서한 것 같았다.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태어나 일본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6·25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았던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 활동을 시작한 제1세대 한인 화가다.
그가 다른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 것은 역사적인 이유가 크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전라도 광주 조선대에서 후학을 양성해왔던 그는 해방 전후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념이 인간의 생사를 가르던 시기, 한쪽에서는 좌익 혐의로 고문을 당했고 이후엔 친미 반동분자로 몰려 죽음의 문턱 앞에 섰다.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고통의 기억이 가득한 한반도에 그의 마음이 더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이념의 족쇄에서 탈출하기 위해 미국행을 선택했다. 한국에서 사용했던 본명 '김보현'을 버리고 '포 킴'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자유를 찾았지만 외로운 디아스포라의 삶이 시작됐다. 한국 미술계에서는 잊혀졌지만 그는 뉴욕에서 쿠사마 야요이, 아그네스 마틴 등 현지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작품세계를 펼쳤고 1960년대 뉴욕을 찾은 김환기, 김창열 등의 정착을 도왔다. 그리고 뉴욕에서 60년의 화업을 마치고 눈을 감았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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