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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37년간 '자발적 실종' 삶의 궤적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5.20 14:05

수정 2022.05.21 18:24

(신간)'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37년간 '자발적 실종' 삶의 궤적

[파이낸셜뉴스]아흔세 살인 현재까지 17권의 책을 발표했고 여전히 세계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 명인 밀란 쿤데라. 그런 그가 '자발적 실종자'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37년 전부터 텔레비전 출연 거부는 물론 언론과도 대면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세상과 소통은 오직 책을 통해서만 했다. 그렇게 책 속으로 사라진 작가. 그래서 소설 속 그의 등장인물들은 사람들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지만 그는 독자들에게 유령 작가가 되었다.

신간 《밀란 쿤데라를 찾아서》는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 기자로 주요 작가들에 관한 여러 연재 기사를 발표해온 아리안 슈맹이 쿤데라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자발적 봉인'의 이유를 탐구한 책이다.

디지털 문명 고도화 속에 '잊혀질 권리'와 '은둔형 외톨이' 등 새로운 문제점과 쿤데라의 선택을 단순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러나 사적 정보까지 신상털기가 자행되는 시대. 언론의 취재 과열 경쟁과 가짜뉴스 양산으로 피해자가 늘어나는 시대. 쿤데라의 선택을 유별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 쿤데라는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경찰이 사생활을 파괴하지만, 민주주의 나라에선 기자들이 사생활을 위협한다"고 지금은 고인이 된 프랑스 문단의 기둥 프랑수아 누리시에를 마주한 자리에서 말했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슈맹은 책에서 "쿤데라가 증발의 유혹에 끌린 것은 1984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대성공을 거둔 뒤 부터"라며 "당시 텔레비전 인기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독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카메라를 멀리하기 위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고 회상했다.

1984년 <아포스트로프>에 출연한 밀란 쿤데라가 카메라를 피해 얼굴을 가리고 있다. 뮤진트리 제공
1984년 <아포스트로프> 에 출연한 밀란 쿤데라가 카메라를 피해 얼굴을 가리고 있다. 뮤진트리 제공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체코어로 소설을 쓰고 프랑스에 정착한 후 언젠가부터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밀란 쿤데라.

동구 공산권 체코 비밀경찰국의 옛 비밀창고에서 드러난 쿤데라 파일이 그렇듯 사생활이 감시를 받는 야만의 시대 작가. 그리고 세기와 국경을 넘나들며 프랑스 정착 이후 현재 서구 사회에서도 사생활 노출을 거부하고 미디어와 접촉 차단 뒤 오직 작품을 쓰며 은둔의 삶을 택한 작가. 쿤데라의 여전한 묵언에도 이 열쇠를 풀기 위해 언론인이자 작가인 아리안 슈맹은 쿤데라의 삶이 스친 모든 곳을 찾아가고, 그의 부인 베라 쿤데라를 만나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매사에 신중한 쿤데라는 지인들에게 편지보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냈다. 맥락 없고 둥근 모양의 사람들, 피카소가 그린 듯한 기이한 인물 도형이 대부분이었다. 쿤데라의 아내 베라도 "꼭 그는 누군가 자신의 영혼을 훔쳐 갈까봐 겁내는 인디언 노인 같다"라는 말을 슈맹에게 했다.

시공을 넘나드는 취재와 쿤데라에 대한 깊은 이해로 쓴 이 책에서 독자들은 쿤데라 스스로 삶을 봉인해버린 이유가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리안 슈맹 지음 | 김병욱 옮김 | 분야 : 인문_에세이
뮤진트리 발행일 : 2022년 5월 20일

(신간)'밀란 쿤데라를 찾아서'... 37년간 '자발적 실종' 삶의 궤적

<지은이> 아리안 슈맹 Ariane Chemin
프랑스 언론인이자 작가.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르 몽드> 특파원으로 특히 작가들에 관한 여러 연재 기사를 발표했다.
지은 책으로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를 다룬 《비밀 결혼》이 있다.

<옮긴이> 김병욱
프랑스 사부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일했다.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며, 옮긴 책으로 밀란 쿤데라의 《불멸》 《느림》 《배신당한 유언들》,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등이 있다.

cerju@fnnews.com 심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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