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적자 올해만 30조 전망…1961년 창사 이후 최대 위기
국제유가에 요동치는 한전 손익…2년에 1번 꼴로 적자 직면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에너지 가격…'적자의 '일상화' 우려
"두부보다 비싼 콩"…적자 때마다 터지는 전기료 인상 논란
"잘나갈 때, 10조 이상 흑자날 때는 뭐했나"…한전 책임론도
한전의 적자가 올해 30조원까지 전망되면서 한전 등 전력그룹사는 6조원대의 긴급 자구책을 마련했지만, 누적 차입금만 50조원이 넘은 상태에서 급한 불을 끄기에도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27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연결재무제표 기준(잠정)으로 한전은 올해 1분기 총 7조786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56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8조3525억원이나 감소한 액수다.
한전의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수준 적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5조8601억원)보다도 2조원이나 큰 액수다. 올해 단 1분기 만에 지난해 전체 손실 규모를 뛰어넘은 것이다.
전력업계와 증권가 등은 이같은 추세로 가면 올해 영업손실이 최대 30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한전이 그동안 영업활동으로 사내에 쌓아둔 이익잉여금 29조3878만원(지난해 말 기준)과 비슷한 액수다.
◆국제유가와 함께 요동치는 적자 한전 소사(小史)
최근 한전의 적자는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세계 공급망 불안 등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 폭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한전의 영업실적은 지난 2008년 이후 국제 에너지 가격의 바로미터(기준점)가 되는 국제유가와 높은 상관관계를 가져왔다.
세계경제 위기를 맞았던 2008년 국제유가(두바이유 기준)가 평균 94달러까지 올라가면서, 한전은 창사 이래 첫 영업적자(2조8000억원) 위기를 맞았다. 당시 정부는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법 시행령 등을 근거로 6680억원 규모의 국고보조금을 지원했다.
이후 이듬해인 2009년 국제 유가가 평균 62달러로 내려가면서 1조7000억원으로 흑자 전환하고, 2010년까지 국제적인 저유가 기조 속에서 흑자 기록(1조6000억원)을 이어나갔다.
다만 2013년에는 고유가(평균 105달러) 속에도 2008년부터 42%가량 전기요금을 올리면서 오히려 흑자를 냈다. 전기요금은 그 뒤로 동결됐지만, 유가가 꾸준히 떨어지면서 2017년까지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국제유가가 평균 41달러를 기록했던 2016년에는 12조원의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당시 평균 유가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직전보다도 낮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국제유가 상승, 원전 가동률 하락 등의 여파로 사상 최대 흑자를 낸지 2년 만인 지난 2018년 적자(2000억원)로 돌아섰고, 2019년에는 유가가 소폭 하락했음에도 더 큰 폭의 적자(1조3000억원)를 기록했다.
2020년에는 유가가 급락하며 4조원대의 '반짝'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지난해 유가 급등에 액화천연가스(LNG) 발전량 증가까지 겹치며 6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에너지價…적자의 일상화 우려
최근 국제유가도 한전에 우호적이지 않다. 2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보다 0.56달러(0.51%) 오른 배럴당 110.33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국제유가의 벤치마크(기준가)인 브렌트유는 0.47달러(0.43%) 오른 109.19달러, 국내 수입 원유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유는 1.25달러(1.16%) 오른 109.1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한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t(톤)당 LNG 가격은 132만7500원으로 전년 동기(54만7600원) 대비 142% 상승했으며, 유연탄 가격도 t당 260.6달러로 전년 동기(89.4달러) 대비 191% 올랐다.
연료비의 급증으로 한전이 발전사에 지급하는 전력도매가격(SMP)도 킬로와트시(㎾h)당 180.5원으로 전년 동기(76.5원) 대비 136% 증가했다. 지난 4월에는 202.11원으로 사상 첫 200원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이같은 LNG와 석탄 가격 상승 등의 영향으로 한전의 1분기 영업비용(연료비, 전력구입비 등 포함)은 전년(14조5256억원) 같은 기간과 비교해 67% 오른 24조2510억원을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의 코로나 확산, 글로벌 인플레이션 등으로 고유가 기조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업계에서는 한전의 적자가 '일상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일상화된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찾아온 것으로도 보인다. 한전은 2008~2021년까지 14년 동안 총 6번의 적자를 기록했다. 단순히 연도별 손익 발생 여부로만 따지면 약 2년에 한 번꼴로 적자 위기를 맞은 셈이다.
◆"두부보다 비싼 콩"…적자 때마다 나오는 전기요금 인상 요구
이같은 상황에서 새 정부가 대통령의 '전기요금 동결' 공약을 사실상 파기하고 연료비 원가를 반영하는 '전기요금 원가주의 원칙'을 천명하면서 업계는 벌써부터 들썩이는 모습이다.
전기요금 인상 목소리가 오늘내일 나온 것도 아니다.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은 지난 2018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수입콩(연료) 값이 올라갈 때 그만큼 두부(전기) 값을 올리지 않았더니 두부 값이 콩 값보다 더 싸졌다"면서 요금인상 필요성을 제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8년 경제위기 당시 한전의 첫 적자를 냈던 김쌍수 전 한전 사장 역시 "콩 값이 올라가면 두부 값도 오르는 것"이라면서, 당시 전기요금 인상과 연료비 연동제 도입 등을 주장했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기요금 조정 움직임이 있는 만큼 한국도 15% 내외의 인상(에너지연구원 21-01 자체 연구 보고서)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흑자 때 미리 위기를 대비하지 않은 한전에 대한 책임론도 만만찮다.
아울러 고금리·고유가·고환율의 '3고(高) 경제위기' 속에서 국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전기요금 인상을 물가당국이 용인할지도 미지수다. 전기 사용량이 폭증하는 여름을 앞두고 있어서 인상 결정도 쉽지 않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한전이) 잘 나갈 땐 뭐했냐, 10조 이상 흑자가 날 때는 뭐했냐"면서 한전의 책임론을 제기한 바 있다. 또 "(한전의) 적자가 계속 커져서 안 된다"면서도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서, 이런 상황은 늘 있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일부에서는 2008년 사례를 들어 보조금 등 재정투입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국민 수용성이 낮은 재정투입보다는 우선 연료비를 반영한 전기요금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연료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에 (한전을) 정상화하기는 쉽지 않다"며 "유럽은 50~60%씩 전기요금이 올랐다. 우리도 그 정도로 올릴 필요는 없지만, 한전이 최소한의 체력을 회복해서 버틸 수 있도록 15~20% 사이에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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