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일등(貧者一燈), 소망이 닿는데 필요한 것은 오직 정성뿐
매년 5월 부처님 오신 날 즈음이면 주요 사찰과 거리마다 색색의 등이 줄지어 걸려 밤 풍경을 한층 돋운다. 연등(燃燈)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의 하나로 번뇌와 무지로 가득 찬 무명(無明)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이런 의미가 담긴 연등을 켜는 것은 어둠과 번뇌를 물리치고 영원한 진리의 광명을 밝힌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연등은 약 2600년 전 인도의 아사세왕이 석가모니를 모시고 설법을 들은 뒤, 석가모니가 기원정사로 돌아가는 길에 수많은 연등을 공양으로 밝혀 도시가 불야성을 이뤘다는 일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연등과 관련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말 그대로 가난뱅이의 등불 하나라는 뜻으로, 가난하면서도 정성을 다해 공양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 고사는 사위국(舍衛國)에 살던 난타(難陀)라는 가난한 여자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어느 날 난타가 사는 마을 근처에 석가모니가 찾아오자 금세 소문이 널리 퍼지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석가모니를 찾아가서 공양을 바쳤다. 난타는 구걸하여 연명하는 궁색한 형편이어서 남들처럼 공양을 바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기름을 사서 등불을 밝혀 들고 석가모니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구걸하여 손에 쥐어진 것은 겨우 한 푼이었다. 그녀는 낙심천만이었지만 사정이라도 해 볼 요량으로 기름장수를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기름 장수는 그까짓 한 푼으로 어떻게 기름을 사겠다는 거냐며 기름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난타가 눈물로 호소하자 기름 장수도 마침내 측은한 생각이 들어 한 푼만 받고 제법 많은 양의 기름을 그녀에게 주었다. 절을 백 번도 더하여 감사를 표한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작은 등불을 밝혀 들고 석가모니를 찾아가 다른 사람들이 갖다 놓은 화려한 등불 사이에 정성스레 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하룻밤이 지나자 다른 사람들의 등불은 기름이 다해 모두 꺼져 갔지만, 난타의 등불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밝고 힘차게 타올랐다. 결국 석가모니도 난타의 갸륵한 정성을 알게 되었고, 그녀를 비구니로 받아들여 제자로 삼았다고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찾아간 사찰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등이 경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각각의 등에는 부처님의 지혜와 광명에 대한 구도의 뜻에서부터 가족과 가까운 이들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는 크고 작은 소망이 담겨 있었다. 모두 난타의 등과 같이 소중한 정성이 가득 담긴 등들일 것이다. 이렇듯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한 등에 담긴 소망은 반드시 부처님께 닿을 것이다. 소망이 부처님께 닿는데 필요한 것은 속세의 부귀빈천, 권력과 지위에 따른 서열이 아니라 맑고 욕심 없는 정성스런 마음뿐이다.
5월 부처님 오신 날이 지나고 며칠 후 새정부가 출범했다.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은 때에 시대적 소명과 역할을 짊어지고 출범한 새정부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와 바램은 부처님 오신 날 찾았던 사찰 경내를 가득 채운 등 못지 않게 많고 간절함이 담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기대와 바램은 그 자체로 새정부와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자 동력이 될 것이다.
불교에서는 등불을 밝히는 연등만큼이나 중요한 공양과 구도의 방편으로 켜진 등불을 바라보는 관등(觀燈)이라는 것이 있다. 켜진 등을 바라보며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들이 연등과도 같은 국민들의 바램을 국민 눈 높이에서 정성스런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한화 컴플위 자문위원 김욱기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