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이승현 수습기자 = "광주가 낳은 위대한 민주투사요, 민중운동가인 그대를 지상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다니…. 이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겠는가."
일평생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오월 사형수' 고(故)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이 존경과 애도 속 마지막 길에 올랐다.
정동년 이사장의 장례는 '5·18민주국민장'으로 '완벽한 진상규명, 헌법전문 수록'을 기조로 진행됐다.
31일 오전 8시30분 광주 동구 금호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의 마지막을 기리는 발인식이 거행됐다. 발인은 고인이 빈소에서 묘지로 향하는 마지막 여정이다.
발인에는 부인인 이명자 오월어머니집 전 관장 등을 비롯해 5·18기념재단과 오월단체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유족과 친지들은 장례식장에서 나와 운구차량에 고인을 안치했다.
행렬은 100여명이 함께했으며 유족 대표로 손자 정주안씨가 영정을 들었다. 정씨 뒤로는 고인의 아들인 정재헌, 정재철씨가 섰다.
시신 운구는 차종수 5·18기념재단 고백과증언센터 팀장을 비롯해 박진우 연구실장, 이기봉 사무처장 등 재단 관계자들이 맡았다.
고인의 유해가 운구 차량 안으로 들어설 때 곳곳에서 눈물이 터졌다. 이명자 전 관장이 울부짖으며 오열했고 초대 5·18구속부상자회장인 이지현씨가 그를 위로했다.
장례위원회는 관계자는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인의 희생과 봉사정신 덕분"이라며 "오월의 마지막날 하늘로 향하는 고인이 이제는 역사 속으로 모든 짐을 내려놓으시고 영면에 들기 바란다"고 전했다.
영결식은 오전 9시30분 5·18 최후항전지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엄수됐다.
영결식 사회는 변재훈 제42주년 5·18민중항쟁 행사추진위원장이 맡았다. 추모행사는 위패·헌화, 묵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조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박몽구 시인이 대표로 조시를 읊었으며 가수 김원중이 '꽃을 심으리 그대 가슴에', 광주 음악인 모임이 '들불'을 부르며 그를 애도했다.
박석무 전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지난 27일 팔순 잔치에 초대받아 함께 점심을 먹고 막걸리를 마셨었는데 29일 세상을 떠나버렸단 말이냐"며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이냐. 소식을 듣자 가슴이 막히고 입이 닫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넋나간 기분일 뿐이다"고 허망함을 드러냈다.
황일봉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장은 "이사장께서 밤낮없이 고군분투한 덕분으로 이제 겨우 오월단체의 공법단체 설립이 인가돼 오랫동안 푸대접을 받아오던 5·18 민주투사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가 막 시작됐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지선스님은 "5·18민주화운동이 완전한 진상규명을 이룰 수 있도록, 그 정신이 오롯이 헌법전문에 담길 수 있도록 고인의 뜻을 받들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인은 지난 29일 오전 10시쯤 심장마비로 운명했다. 향년 79세다.
전남대 화학과 재학 중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1964년 반일 성향의 6·3항쟁에 참여해 한일굴욕외교반대 투쟁을 이끌다가 구속됐다.
전남대 복학생 신분이던 1980년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당시 김대중 총재의 자택에 방명록을 남겼다는 이유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군사재판에서는 '광주사태 주동자'로 지목돼 내란수괴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1982년 12월 성탄절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됐다.
출소 후에는 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과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공동의장, 5·18기념사업추진위원회 사무국장, 5·18기념재단 이사장, 광주 남구청장 등을 지냈다.
고인은 생애 마지막까지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지난 28일 열린 5·18기념재단의 문학상 시상식과 제42주년 5·18민중항쟁행상위원회의 마지막 행사 '오월의 밤'에 참석했다.
장례추진위원회는 영결식 종료 후 오후 2시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안장식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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