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부터 극명하게 편이 갈린 영국이나 러시아 등 미·중의 각 우호국들은 그나마 이해가 간다. 오커스(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파이브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기밀정보 공유 동맹),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신흥경제 5개국) 결성은 당장 최근의 일이 아니다.
상황이 급격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이달 한일 순방이 계기가 됐다. 미국이 중국 포위망 강화에 방점을 찍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키고,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 안보협의체) 정상회의를 개최하자 중국이 즉각 반응했다.
중국은 순방 기간을 전후로 일본 열도와 대한해협, 대만 해역, 한일방공식별구역(카디즈)에 자국 군함을 진입시켰고 왕이 외교부장을 남태평양에 보내 안보·경제 협력을 아우르는 협정(포괄적 개발 비전) 합의를 시도했다. 군사활동은 항의를 한다는 명백한 의사표현이다. 자국 또는 동맹·우호국의 해역에서 군사력을 자랑하면 신경 쓰지 않을 국가는 없다. 하지만 남태평양의 조그만 섬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언뜻 보기에 좀 생뚱맞기도 하다.
이들 섬 국가의 지정학적 위치와 협의 내용을 살펴보면 의도는 분명해진다. 이곳들은 호주와 불과 수천㎞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중국은 여기에 중국 공안을 파견하는 등 안보협력 관계를 맺고 어업과 네트워크, 천연자원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호주 입장에선 앞마당에 중국이 사실상 진을 치는 형국이 된다. 이보다 북쪽인 괌에 서태평양 거점을 둔 미국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국제사회의 우려도 이러한 점이 반영됐다. 포괄적 합의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진 미크로네시아 대통령이 "불필요하게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잘하면 신냉전 시대, 최악의 경우 세계대전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전략에 들어간 남태평양 섬 국가는 파푸아뉴기니를 제외하고 인구가 100만명 넘지 않는 소국들이다. 국내총생산(GDP)도 세계 순위 100위권 한참 밖에 있으며 주로 관광으로 경제를 유지한다. 패권이나 경쟁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이런 국가들이 느닷없이 신냉전의 중심에 섰다. 그들의 주도적 의지는 반영되지 않았다. 미·중의 복잡한 셈법에서 희생양에 더 가까워 보인다. 미·중이 말하는 공동번영, 세계안정이 무색하다. 그러고 보면 사드 보복을 당했고, IPEF에 가입한 한국도 남의 얘기로 넘길 상황만은 아니다.
jjw@fnnews.com 정지우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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