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뉴스1) 남승렬 기자 = '변호사님 건강하세요 ^^'
깨진 건물 유리창만 아니라면, 여전히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 냄새만 아니라면, 누가 이곳을 참사의 현장이라고 생각할까.
대구 법무빌딩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이 발생한지 사흘째인 12일 오후 수성구 범어동의 법률사무소가 밀집한 골목.
대구지법에서 불과 수십m 떨어진 이 일대에는 간혹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인근 아파트단지 주민들이 눈에 띌 뿐, 불어오는 바람마저 초여름 더위를 식힐 만큼 청량했다.
깨진 빌딩 유리창과 코를 찌르는 그을음 냄새만 아니라면 그저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산책하던 30대 한 시민은 "경찰 폴리스라인도 걷히고 기자들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건물 주변은 어느 정도가 정리됐지만 매캐한 냄새는 여전하다"며 "오후부터 공사업체 직원들로 보이는 인부들이 건물 지하와 내부를 정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화가 발생한 7층 빌딩 입구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건물에 입주한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이 기른 것으로 보이는 화초와 실내 공기정화식물 등이 심어진 화분이 옮겨져 있었다.
누군가 건물 청소를 위해 화마를 견디고 생명을 유지한 이 화초와 식물들을 밖에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열기로 잎이 시들어 버린 식물의 화분에 '변호사님 건강하세요 ^^'라고 적힌 문구가 보는 이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빌딩 입구 유리창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한 시민이 붙인 것으로 보이는 메모지가 보였다. 노란색의 메모지에는 검은 펜으로 쓴 추모의 글이 또렸했다.
'뉴스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이렇게 국화와 소주 한잔을 놓고 갑니다. 먼저 희생자 유족 분들께 위로의 말씀과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빌며 생존하신 동료 직원 분들은 고인들을 위해서라도 꼭 이겨내시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신이라는 단어가 원망스러운 일입니다. 다시 한번 대구 변호사 사무실 '묻지마 테러사건' 희생자들께 진심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앞서 지난 9일 오전 10시55분쯤 방화범 천모씨(53·사망)는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법 인근에 있는 7층짜리 법무빌딩 2층 변호사 사무실 203호에 휘발유가 든 용기를 들고 들어가 불을 질렀다.
이 불로 천씨를 포함해 당시 현장에 있던 변호사와 직원 등 7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쳤다.
천씨는 대구 수성구의 한 재개발지역 사업에 투자했다가 분양 저조 등으로 큰 손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에 실패한 그는 시행사 측을 고소했고, 수년에 걸쳐 진행된 송사와 재판 등에서 잇따라 패소하자 상대측 법률 대리인인 A변호사에게 앙심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화재 당시 A변호사는 다른 재판 일정이 있어 타 지역으로 출장을 가 화를 면했으나,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사무실을 함께 쓰는 B변호사 등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무고하게 숨진 B변호사는 생전 소송 구조 사건을 도맡는 등 선한 변호인으로 동료들 사이에 평이 자자했으며, 사무직원 30대 C씨는 결혼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천씨의 범행으로 숨진 희생자 6명의 발인과 화장은 이날 모두 완료됐다. 천씨를 제외한 희생자 6명의 합동분향소는 13일 오후까지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운영되며, 대구지방변호사회 차원의 합동영결식이 열릴 예정이다.
한편 경찰은 천씨가 범행을 사전에 계획하고 미리 휘발유를 구입한 뒤 9일 오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것으로 보고 주변 CCTV와 동선을 추적해 휘발유 구입 경로 등을 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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