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연·2018년 재연한 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서 호흡
4년 만에 다시 출연…24일~7월1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37년차 이경성, 첫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로 단숨에 주목
38년차 이대연, 2000년대 초반부터 드라마·영화계 '약방의 감초'
"연극 출신이 다른 매체에서 잘하는 이유에 대해 많이 물어보세요. 기본기도 물론 있겠지만, 단역 배우부터 주인공까지 똑같은 연습 시간을 할애하면서 같이 집중하기 때문이죠. 작품 전체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이 장면과 연극의 목표가 무엇인지 기본적으로 똑같이 익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배역도 자기 배역이지만 전체를 보는 눈을 키워주는 것이 연극이 아닌가 생각해요."(이대연)
연극 기반의 배우 이경성(58)과 이대연(58)은 공통점이 많다. 동갑내기 인데다가 데뷔해도 비슷(이경성 1986년 극단 광장 '어두워질 때까지'·이대연 1985년 연극 '헬로 지저스')하다.
연기 호흡을 처음 맞춘 건 2017년 창작공동체 아르케의 연극 '툇마루가 있는 집'. 두 배우와 역시 나이가 같은 김승철(58) 아르케 대표가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1970~1980년대 청년기를 보내며 상처를 받은 중장년들이 트라우마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와 화해하는 과정을 따듯하게 톺아본다.
주인공 '진구'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형의 기일을 맞아 아내와 함께 자신이 어릴 적부터 청년기까지 살았던 옛 집을 찾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대연이 진구를 맡았고, 이경성은 엄마와 아내 역을 연기했다. 2018년 재연했고 4년 만에 다시 공연(24일부터 7월10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을 앞두고 있다.
이번이 삼연째인데 이전보다 기대감이 더 크다. 이경성이 최근 마니아 층을 형성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삼 남매의 엄마 '곽혜숙' 역을 맡아 호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한시도 몸을 가만있지 않으며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는 우리네 어머니의 현실이었다. 사실 삶에서 해방이 가장 필요한 건 엄마라는 이야기가 애청자 사이에서 계속 나왔다. 지극히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준 이경성은 놀랍게도 '나의 해방일지'를 통해 TV 드라마 데뷔를 했다.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의 원작인 영화 연극 '날 보러 와요', 국내 연극계의 상징인 배삼식 작가·고 김동현 연출가 그리고 고 이연규 배우와 뭉쳤던 수작 '먼 데서 오는 여자' 등이 대표작이다. 지난해와 올해 공연한 연극 '조치원-새가 이르는 곳'(연출 이철희)에선 형을 죽일 수밖에 없는 동생 '만국' 역을 맡아, 인간 본연의 감정을 그려내며 호평 받았다. 2005년 제41회 동아연극상에서 남자연기상도 받았다. 영화 '박하사탕' '파주' '공동경비구역 JSA',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스토브 리그'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등에 나왔고 현재 방송 중인 드라마 '으라차차 내인생'에 출연 중이다.
최근 서울 동대문구 창작공동체 아르케 연습실에서 만난 두 배우는 연극 출연과 매체 출연이 시너지가 된다며 '툇마루가 있는 집' 세 번째 공연에서 더 깊어진 감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4년 만에 '툇마루가 있는 집' 무대에 다시 오르시게 됐습니다.
"제 입장에선 편해진 부분도 많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겪은 부분이 있다 보니까 감정의 깊이가 예전보다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 해요. 딸내미 결혼했죠. 손주도 봤죠. 2년 전엔 남편(정봉용)이 암 투병하다가 하늘나라로 갔죠. 그 짧은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이경성)
-2017년 처음 두 분이 호흡을 처음 맞추셨을 때는 어땠습니까?
"대연 배우님이 워낙 잘하시니까 저야 불편함이 없었죠. 제가 복 받았어요."(이경성)
"저희야 '미덕'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전에 기본으로 상대방 말을 정확히 듣고 반응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으로 알고 배웠어요. 상대방을 '받혀준다'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성실하게 상대방의 말을 듣고 성실하게 반응하면 당연히 상대방이 편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죠. 그런 연극에 임하는 자세가 경성 배우님과 서로 닮았습니다."(이대연)
-대연 배우님은 연극계에서 묵직한 역을 주로 맡아오셨는데 매체에선 특히 형사를 많이 연기하셨어요. 매체에서도 좀 더 깊이가 있는 역할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경성 배우님은 첫 드라마 출연이 큰 화제가 돼 감회가 남다를 거 같아요.
"(대중이) 막 절 알아보거나 하지는 않아요. 주변 아시는 분들이 연락을 많이 해오시기는 하죠. '드라마 잘 봤다'고요. ('나의 해방일지' 엄마 역에 왜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한 것 같냐고 묻자) 어머니라는 존재가 가족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존재잖아요.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저린데 '나의 해방일지'에선 고생을 많이 하시다 돌아가시는 바람에 시청자가 더 애정을 갖게 된 거 아닌가 생각해요. (드라마를 통해 '해방'된 부분이 있냐는 물음에) 저는 기본적으로 제가 억압받고 있다거나 제약받고 있다는 생각은 안해요. 그냥 제가 이런 역할을 해냄으로써 연기가 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은 갖고 있어요."(이경성)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툇마루가 있는 집'에서도 경성 배우님이 연기하는 엄마는 배추 다듬고 김치 만들고 또 계속 뭘 만들어요. 계속 일만 하는 거죠. '나의 해방일지'에서 기정(이엘 분)이가 했던 말이 정답이에요. '엄마는 과로사한 거야'라는 표현. 극 중에서 엄마는 해방돼야 할 또 다른 인물이어야 했는데, 죽음으로써 해방될 수밖에 없어 서글픔을 느꼈죠. 엄마의 희생이라는 허울 뒤에 숨겨져 있었던, 참 가슴 아픈 내용이에요. 그 부분은 우리 연극(툇마루가 있는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고 어머니…."(이대연)
-'툇마루가 있는 집'은 연극계에서 드물게 중장년층이 주인공이고, 이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김승철 연출이 첫 모임 때 극을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대학 시절에 나무 위에서 구호를 외치는 친구들 보면서 쓰게 됐는데 이제 해소하고 화해하고 용서할 시점이 된 거 같다면서요. 승철 연출이 '경성아 네게 주는 선물이야'라면서 대본을 줬는데 '내가 개인사를 얘기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삶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어요. 저희 아버지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할머니가 간호하셨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해 할머니가 돌아가셨죠. 저 역시 학교 다닐 때 한쪽에서는 데모하는데 한쪽에서는 잔디 밭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어요. 그 양쪽 모습을 지켜보면서 드라마처럼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대연 배우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저 역시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했어요."(이경성)
-두 분 다 극단에 몸 담으셨거나 몸 담고 계십니다. 요즘 연극계에서 극단은 찾아보기 힘든데, 극단 체제가 연극에 큰 도움이 되죠?(국립극단에 있었던 이경성은 2009년부터 아르케 소속이다. 이대연은 신시, 연우무대, 차이무 등 유명 대학로 극단들을 거쳤다.)
"극단을 하면 같이 하는 배우들과 오래 호흡을 맞춰 앙상블 면에서도 좋아요."(이경성)
"전 현재는 무소속이지만, 극단 작업은 중요하고 훌륭해요. 연극의 본질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극단은 임의 단체라 영원무궁할 수는 없지만, 모두들 시대적 소명이 있어요. 아르케가 지금 이 시대에 맞는 작업을 훌륭히 하고 있죠. 연극은 보따리 장사가 아닌 극단 단위로 하는 게 맞아요. 연극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는 집단이 만들어내는 시너지가 크거든요. 아르케도 14년이 됐으니 그걸 발휘할 시점이 됐죠. 극단 작은신화의 '돐날'에서 그런 걸 느꼈거든요. 극단마다 쌓이고 발효가 돼 터져나오는 시점이 있어요. 또 일정하지만 않지만 자연스럽게 쇠락할 수 있는 것도 극단이죠. 그럼에도 연극은 극단 단위로 이뤄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이대연)
"전 다른 걸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배운 게 이거뿐이라서요. 물론 좋아서 하는 것도 있고요. 이제 제 삶의 일부분이 됐으니까 (연기) 없이는 생활하기 힘들어요. 그렇게 돼서 다른 걸 할 생각은 없어요. ('나의 해방일지'를 통한 드라마 출연은) 제게 첫 경험이니까, 모든 게 새로웠어요. 새로운 곳에서 연기를 해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미었습니다. 더구나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았어요. 모든 배우, 스태프분들이 잘 챙겨줘서 재밌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여러 카메라도 동시에 촬영하니 (김석윤) 감독님이 연극하는 거라 똑같이 해도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드라마는 또 불러주시면 하고 싶어요. 그래서 (매체와 연극 무대를 꾸준히 병행하는) 대연 배우님에게 많이 물어보고 있어요."(이경성)
"중간 중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연극할 배우 깜량이 못 되는 사람인데 억지로 해온 생활이 아까워 붙잡아 온 건 아닌가'라는 생각. 안 되는 놈이 억지를 부리지 않았라는 생각이죠. 그 때마다 대안이 없었어요. 다리를 끊고 퇴로를 차단하고 이 일에 들어왔기 때문에 돌아갈 곳도 마땅치 않고요. 하하. 그런데 그런 상태에 처해 헤맬 때마다, 작품이든 상이든 (회복할) 특정 계기가 있었던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툇마루가 있는 집의 '진구와 어머니에게 각각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나이가 드니까 알겠다. 허물어져가는 옛집에 오니까 보이더라. 중학생 때 나도 보이고 대학생 때 나도 보이고. 엄마, 아버지와 징그럽던 인연도 보이고. 좋아했던 또 미워했던 형도 보이고. 환갑을 앞두니까 이런 과거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되는 거 같구나. 이제 그만 분노하고 용서해도 될 나이가 된 거 같다."(이대연)
"극 중 엄마가 39년생이신데, 저희 친정엄마도 39년생이세요. 제가 육십이 다 돼 가는데도 저희 엄마는 '밥은 먹었냐' '연습하느냐고 힘들지 않냐'라며 항상 연락하세요. 그래서 극 중 엄마와 저희 엄마에게 이런 말씀 드리고 싶어요. '잘 살아오셨다고. 이제 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자식이나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 해방돼 자신의 인생을 사시라고. 해방되시라고.'"(이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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