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뉴스1) 이상휼 기자,이재춘 기자,조준영 기자,박찬수 기자,정우용 기자,박진규 기자,이승현 수습기자 = 올초부터 이어진 가뭄 장기화로 영남과 전국 각지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산발적 소나기가 내리지만 가뭄 해갈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가뭄으로 인해 봄철 산불이 전국적으로 전년도 대비 두 배 이상 늘었으며 해갈이 되지 않아 작물의 생육 부진, 수확량 감소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농작물 가격도 치솟을 전망이다.
양파 최대 산지 전남 무안에서는 양파값이 불과 3개월 만에 두 배 폭등했으나 농민들은 오히려 한숨을 내쉬었다.
무안 현경면의 농민 박경만씨(65)는 "양파값이 좀 오르면 뭐하나. 인건비와 자재값, 유류대 등 생산비가 너무 올라 손해보는 건 마찬가지"라며 "현재 가격이 오른 양파들은 만생종으로 중간상인들 몫이다. 가격이 오르면 오른 대로, 떨어지면 떨어진 대로 이래저래 손해"라고 쓴웃음을 지었다.
13일 낮 경기북부지역에서는 비가 내렸다. 시원한 소나기는 아니어서 농민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있었다. 양주시의 한 농민은 "비 소식이 있어 기대했는데 바람만 많이 불고 정작 비는 적었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남양주시 농업기술센터 용석만 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최근 만나는 농업인들마다 물 부족으로 하소연한다. 한 방울 물이라도 아쉬울 때다. 오늘 새벽에 천둥이 치면서 비가 내려서 야호 환호성을 질렀다"고 밝혔다.
◇ 충북 강수량 평년대비 절반…"호스 사다 물댔는데 이젠 한계"
상당 기간 가뭄이 이어진 까닭에 충북 도내 곳곳에서는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기상청 등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충북 평균 강수량은 193.6㎜다. 평년(345㎜) 대비 55.6%에 불과한 수준으로 도내 전역이 '기상 가뭄' 상태다.
지역별로는 청주와 충주, 제천, 진천, 음성, 증평, 영동이 보통 가뭄 단계에 포함됐다. 괴산·보은·옥천·단양에서는 약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다. 경중만 다를 뿐 전역이 가뭄 피해 '위험권'에 포함된 셈이다.
본격적인 농번기에 농업용수 역시 점차 말라가고 있다.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상 이날 기준 도내 농업용 저수지 187곳의 저수율은 52.4%다. 3개월(89.7%) 전보다 무려 37.3%p나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22.1%p 적다.
가뭄으로 말미암아 일부 지역에서는 농작물 작황 부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도내 마늘 주산지인 보은군 탄부면에서도 피해가 나타난다. 겨울 가뭄에 이어 봄 가뭄까지 이어진 탓에 마늘 씨알이 작게 형성됐다.
탄부면 대서마늘작목반 관계자는 "논 마늘은 모내기 때 관개수로를 이용해 물을 댔는데도 겨울 가뭄으로 결구를 키우지 못해 마늘 알이 작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해당 작목반은 마늘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15~20%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달 말부터 수확을 시작하는 감자 역시 생육기 때 찾아온 가뭄으로 작황이 부진하다. 감자 재배 농가는 자구책으로 밭에 직접 물을 대고 있지만, 이 마저도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2000㎡ 규모 밭에서 감자농사를 짓는 김충식씨(58·내북면)는 "기다리고 기다려도 비가 내리지 않아 직접 호스를 사다가 감자 밭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천시 덕산면의 한 논에서는 시드름병이 발생, 0.8㏊ 정도의 피해가 발생했다. 물 부족 현상도 우려된다. 상수도 대신 계곡물이나 지하수를 사용하는 오지마을은 가뭄이 더 계속되면 식수난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급수 지원 말고는 뾰족한 해결책도 없는 상태다. 제천 송학면 한 마을 주민은 "농업용수도 문제지만, 상수도가 없는 오지마을은 가뭄이 더 계속되면 식수난까지 겪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가뭄 피해가 날로 악화하자 각 지자체는 해결책 마련에 나섰다. 충북도는 도내 11개 시·군과 합동 TF(태스크포스)팀을 꾸려 가뭄 피해 대응에 나섰다. TF팀은 관심-주의-경계-심각으로 구분, 단계별 대응에 나선다.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수자원공사, 기상청을 비롯한 관계기관과 협력 체계도 구축한다.
시·군별로 자체 대응도 이뤄지고 있다. 청주시는 예산 2억3000만원을 들여 양수 장비를 구입하고, 살수차를 임차해 농업용수를 공급하기로 했다. 소·중형 관정 개발 사업도 병행한다. 음성군도 긴급 예비비를 편성, 관정 개발과 관로 설치 사업을 할 계획이다. 선제적 가뭄 대비를 위한 지표수 보강개발사업, 농업생산 기반 정비사업, 한발 대비 용수개발사업도 추진할 예정이다.
◇ 가뭄 계속되고 마른장마 이어지면 경북 피해 심각
이날 경북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경북지역 강우량은 146.5㎜로 평년 평균(413.1㎜)의 35.4%, 지난해(344.4㎜)의 42.5% 수준에 그치고 있다. 주요 댐과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52.9%로 평년(68.9%) 대비 76.7%, 지난해 대비 69.1%를 보이고 있다.
경북지역의 저수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671개, 23개 시·군이 관리하는 4717개 등 5388개가 있는데 총 저수량은 5억1744만4000톤, 수혜면적은 6만8141㏊에 이른다.
현재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청도 운문댐 등 9개 댐의 저수율은 경북 전체 평균(52.9%)보다 3.4%에서 최대 35.7% 낮아 가뭄이 계속되면 식수난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댐 저수율이 가장 낮은 곳은 공사가 진행 중인 영주댐(17.2%)을 제외하고 운문댐(23.6%)으로 이미 '가뭄단계'에 들어간 상태다. 군위댐 25.4%, 영천댐 27.5%, 부항댐 30.4%, 임하댐 31.9%, 성주댐 44.7%, 안동댐 48.8%, 경천댐 49.5%의 저수율을 보이고 있다.
대구 수성구와 동구, 경북 경산시, 영천시, 청도군 등에 식수를 공급하는 운문댐은 지난 3월 말 가뭄 '주의'단계였다가 지난 5월 27일 '심각'단계로 상향됐다. 이는 2018년 3월 저수량 기준 가뭄단계 설정 기준이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운문댐은 저수량이 6800만톤 아래로 내려가면 '관심'단계, 6200만톤 이하면 '주의', 4100만톤 이하면 '심각'단계가 발령된다. 현재 운문댐의 저수량은 3800만톤에 불과하다. 운문댐이 말라가자 대구시는 13일 대구 수돗물의 26%를 공급하는 경북 청도 운문댐의 공급량을 줄이고 낙동강 수계로 전환하기로 했다.
지난달 3차례 수계조정을 통해 운문댐 용수 26만톤 중 8만톤을 낙동강 수계로 대체 공급한데 이어, 15일부터 운문댐 물을 1만3000톤 추가로 줄이고 낙동강 물을 대신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 낙동강유역본부 김영범 차장은 "2018년 2월 운문댐 저수율이 9.7%대로 떨어질 때와 같은 심각한 가뭄 정도는 아니어서 당장 농작물 등의 피해가 크지는 않지만 장마 시기에도 가뭄이 계속되면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보령댐 '경계'·운문댐 '심각'·횡성댐 '관심' 단계…전국 가뭄 비상
보령댐의 경우 작년 8월부터 ‘경계’ 단계로 관리 중에 있다. 저수율은 22.6%로 예년의 32.6%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현재 보령댐 유역 평균 강수량은 208㎜다. 예년 평균은 339㎜다. 현재 저수량은 예년의 69% 수준으로 하천유지용수를 일부 감축해 공급 중이나, 금강 물을 취수해 보령댐에 공급하는 도수로를 통하여 부족한 강우에도 생활・공업・농업용수를 정상공급 중이다.
한국수자원공사는 이날 대전 본사 물관리종합상황실에서 가뭄대응을 위한 비상대책 회의를 개최, 전국 댐 가뭄 상황 및 용수공급 대책을 점검했다.
이날 박재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주관으로 본사와 4개 유역본부(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섬진강), 보령댐 등 가뭄 상황 관리가 필요한 댐 지사들이 참여, 각 권역 및 댐별 가뭄 상황을 공유하고 향후 댐 운영계획 및 용수공급 대책을 논의했다.
수자원공사에서 관리 중인 34개 댐(다목적댐 20개, 용수댐 14개) 유역에 내린 12일 현재 평균 강수량은 예년의 55% 수준으로, 가뭄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34개댐 유역 평균 강수량은 176㎜로 예년 319㎜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이같이 부족한 강우에도 불구, 한국수자원공사는 꼭 필요한 용수만 공급하면서 선제적으로 댐 저수량을 관리함에 따라, 현재 34개 댐의 평균저수율은 38.2%로 예년의 100% 수준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예년의 34개 댐 평균저수율은 37.7%다.
박재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은 "예년보다 적은 강수량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국민생활이나 산업에 필요한 물 사용에 차질 없도록 가뭄 해소 시까지 전사적 총력대응이 필요한 시기"라며 "가뭄대응은 특히 협업이 중요한 만큼, 정부・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력하고, 댐 운영에 철저를 기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 양파가격 폭등, 인건비·자재비는 더 뛰어 농민들 한숨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13일 양파 15㎏ 당 가격은 1만9340원을 형성했다. 20일전 1만1068원(15㎏)에서 10일전 1만6620원(15㎏)으로 오르더니 이제는 2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6월 양파 평년 가격인 1만471원의 2배 가까운 금액이다.
올해 양파는 지난해 저가에 따른 재배면적 감소와 이상 기후, 가뭄 등으로 출하량이 줄면서 가격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안지역 양파 재배면적만 봐도 2037㏊로 지난해 대비 300㏊가 줄었다.
특히 1~2월 한파가 지속되고 5월 본격적으로 양파가 자랄 시기에 가뭄이 지속된 데다 때 이른 고온까지 더해지면서 생육 저하로 공급량이 급격히 감소했다.
양파값이 올랐지만 농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인건비와 자재비가 오르면서 농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인건비는 예전 10만원선에서 올해는 15만~17만원선이다. 농약대와 비료비는 30%이상 올랐다. 생산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다.
양파값이 오를지 내릴지 모르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파종과 동시에 계약재배를 한다. 애초 정해진 금액에 양파를 내놓으니 가격 상승에 따른 이익은 크지 않다.
무안 양파 농민 박신대씨(71)는 "만생종이 나오기 전 이미 중간상인들이 오를 것을 알고 다 밭떼기 거래를 마쳤다"며 "가격이 올라봤자 우리들 손에 돌아오는 건 없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양파값이 좋지 않아 올해는 30%만 짓고 밭을 놀렸다"며 "50년 동안 양파와 마늘 농사를 지었으면 먹고 살만 해야 하는데 남은 건 빚 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