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곽인찬 칼럼] 금융감독 칼, 함부로 쓰지 마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6.13 18:30

수정 2022.06.13 18:30

[곽인찬 칼럼] 금융감독 칼, 함부로 쓰지 마라
기해천수란 고사성어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사람 기해가 철천지 원수 해호를 임금에게 천거했다. 비록 원수이지만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만 해호가 일찍 죽었다. 그러자 기해는 자기 아들을 천거했다.
임금이 "그 사람은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묻자 기해는 "임금께서는 제 후임자로 누가 적당한지 물으셨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기해천수 고사는 능력주의 인사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지난주 기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물었다. "금융감독원장에 검사 출신이 적합하다고 보는 이유가 있는가?" 대통령이 말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경제학과 회계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오랜 세월 금융수사 활동 과정에서 금감원과 협업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저는 아주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이복현 신임 금감원장은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의 막내로 분류된다. 이를 두고 검찰 편중 인사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능력주의 인사원칙을 고수할 참이다.

생각지도 않은 데서 옹호 발언이 나왔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페이스북에서 "검사 출신을 금감원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충분히 고려할 만한 인사"라고 두둔했다. 김 전 원장은 참여연대 출신이다. '삼성 저격수'로 부를 만큼 강성이었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금감원장에 임명하자 금융계가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금방 사임하는 바람에 뜻을 펴지 못했다. 그런 사람이 보수 윤 대통령의 용인술에 찬성한 것은 의외다.

사실 검찰 출신이라고 금감원장을 하지 말란 법은 없다.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 때 금감원은 신망을 잃었다. 간판만 '금융검찰'일 뿐 빈수레 소리만 요란했다. 이제 진짜 검찰 출신 수장이 왔으니 실추된 위상을 되찾을 기회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신임 이 원장은 적임자가 맞다. 능력을 갖추면 자기 아들도 추천하는 마당에 검찰 후배를 임명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원래 금융은 규제산업이다. 은행·증권·보험 등 라이선스를 받은 금융사는 배타적인 권리를 누리는 대신 감독당국의 강한 통제를 받는다. 금융감독원은 있지만 반도체감독원, 건설감독원은 없다. 부동산감독원 얘기가 잠깐 나오는가 싶더니 역시 흐지부지됐다. 오직 금융만 감독원을 따로 둔 데서 보듯 금융사에 대한 통제는 숙명적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금융은 산업이기도 하다. 과거 영국, 지금 미국을 보라.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는 예외 없이 금융 패권국이다. 우리는 금융이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보조 역할에 머물러 있다. 그 덕에 삼성전자, 현대차 같은 글로벌 기업이 탄생했으나 '금융의 삼성전자'는 나오지 않았다. 금융사가 좀 튀려고 하면 여지없이 감독당국이 죽비를 내리친다.

신임 이 원장에게 당부한다. 흐트러진 금융질서는 바로잡아야 한다. 다만 검찰 티를 덜 낼수록 좋다. 칼이 거칠면 금융 '산업'이 기를 펴지 못한다. 옛날 중국에 포정이란 요리사가 있었다. 그는 소의 뼈와 살을 결대로 잘 발랐다. 그 덕에 소를 잡아도 칼날이 무뎌지지 않았다.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했다. 금융 감독의 힘은 칼이 아니라 실력에서 나온다.
이 원장에게 포정과 같은 예술적인 칼 솜씨를 기대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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