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펫 라이프

"유엔은 아니지만 안보리에요"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6.23 18:09

수정 2022.06.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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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아니지만 안보리에요"
"강아지들은 말을 못하니 어디가 아픈지 검사해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일단 입원해서 모든 검사를 다 해볼게요."

보리가 우리 가족이 된 지 넉달쯤 됐던 어느 날. 갑자기 축 처지고 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생후 7개월. 행여나 큰병에 걸린 것은 아닐까 걱정돼 부랴부랴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는 피를 뽑더니 '염증 수치가 너무 높아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주사를 맞히고 약을 지어줬다. 다만 약을 먹여도 구토를 계속하면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결국 하루 만에 입원을 하게 된 것이었다.


췌장염을 진단하는 키트도 애매하게 나와 명확하진 않았다. 보리는 며칠째 밥을 못먹어 한눈에 봐도 수척해졌다. 3㎏이 넘던 몸무게는 2.28㎏까지 빠져버린 상태. 눈물이 핑 돌았다. 임신 초기인 아내는 아예 옆에서 펑펑 울고 있었다. 저렇게 울다가 뱃속 아기에게도 안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슬슬 걱정이 됐다.

푸들인 보리는 우리 부부에게 소중한 '개딸'이다. 우리는 30대 후반에 결혼해 아이를 빨리 가지려 노력했지만 아기천사는 쉽사리 오지 않았다. 인공수정을 거쳐 세번째 시험관 시술도 실패하자 아내는 정말 우울증이 올 것 같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 그 아이가 8~9세쯤 되면 반려동물을 입양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계획을 앞당기기로 했다. 우리는 사랑을 주고, 또 받을 존재가 간절히 필요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이 있던 아내는 유기동물 보호소에 가보자고 했다. 그러나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던 나는 강아지 때부터 키워보고 싶었다. 아내는 나의 뜻을 받아들여줬다. 대신 펫숍에서는 사지 않고, 건강하게 어미견 옆에서 자란 아이를 데려오기로 했다.

우리는 몇 주간 온라인 애견 커뮤니티를 뒤졌다. 종을 무엇으로 선택할까, 이름은 무엇으로 지을까, 하늘에 붕붕 뜬 것처럼 설레던 날들이었다. 그러다 당시 우리가 살던 서울 동작구 집에서는 다소 먼 노원구 상계동에서 강아지를 분양한다는 글을 보고 만나러 가기로 했다. 그날은 무척 화창한 날이었다. 한강대교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리며 보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3월 말의 따뜻해진 공기가 곧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될 것이란 암시를 주는 것 같았다.

분양을 한다는 여성이 찾아오라고 한 상계동의 아파트로 찾아갔지만, 집 내부에서 어미견은 보이지 않았다. 강아지는 어디 있나요, 묻고 보니 책꽂이 제일 아래 칸에서 낮잠을 자던 갈색 아기푸들 한마리가 짧은 다리로 총총 걸어나오고 있었다. 너무나 사랑스러워 우리 부부는 첫눈에 반했다. 그러나 집 내부를 둘러봐도 어미견은 보이지 않았고, 강아지 용품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 여성은 강아지를 데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에게 재분양을 하는 것 같았다. 따져 묻지는 않았다. 이미 우리는 이 강아지에게 푹 빠져버렸기 때문에.

데리고 오자마자 집 근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강아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의사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어디서 분양받으신 거예요? 애견숍에서 산 건가요?"

"가정집에서 분양받았어요. 가정 분양을 받고 싶어서 집까지 찾아갔는데, 혼자 사는 여성분이 키우려고 분양받았다가 저희에게 재분양한 것 같습니다."

"공장식으로 번식한 곳에서 나온 강아지 같네요. 여기 배를 자세히 보면, 검은색 표시 보이나요? 희미하게 숫자가 쓰여 있어요. 이건 농장에서 몇 번째 새끼라고 배에 매직 같은 것으로 쓴 표시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얘기였다. 정말로 업자에게서 강아지를 사고 싶지 않았는데. 그러나 이 강아지에게 잘못은 없었다. '강아지 공장'을 만들어 판 업자들이 미울 뿐. 우리는 이미 이 강아지를 '출신 성분'과 상관없이 사랑하기로 했다.

이름은 '보리'라고 아내가 지었다. 중학교 때 짝꿍 이름이 보리였는데, 뜻이 좋아 보였다고 했다. 벼와 달리, 씨만 뿌려도 별다른 병충해 없이 잘 자라고, 늦가을에 파종해 쌀이 떨어진 시기에 사람들의 배를 채워준 소중한 곡식이라는 의미에서다. 특히나 개 이름의 경우 '초코' '커피' '모카' '우유' 등 먹는 것의 이름을 붙일 경우 건강하게 잘 산다는 세간의 설도 있었다. 개아빠가 된 내 성이 '안'씨라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가 돼 우리가 이 아이의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뜻처럼도 여겨졌다.

보리는 우리에게 사랑만을 줬다. 사람을 잘 따르는 데다 영특했다. 이틀 만에 배변을 가렸고, 금방 '앉아'도 배웠다. 되지 않는 임신에 힘들어하던 아내도 보리와의 시간을 즐거워했다. 강아지 장난감과 옷 등을 고르며 그동안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모습이었다. 그 덕분인지 시험관 4차 시술에서 아이도 생겼다. 보리는 자타공인 복덩이로 등극했다.

그랬던 보리가 아팠을 때는 도리어 내가 아팠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리는 병문안을 간 우리 품안에서는 기분이 좋다가도 다시 작은 케이지의 입원실에 갇히면 큰 소리로 울었다. 그 모습을 보며 돌아설 때는 아내도 나도 모두 눈물을 쏟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보리는 그렇게 일주일을 입원했다가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회복된 것을 확인하고 건강하게 퇴원했다.

지금 우리 나이로 여섯 살이 된 보리.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한 기분이 든다. 보리는 한 살 어린 사람 동생과도 잘 지내고 있다. 보리는 항상 아기 울음소리를 우리 부부보다 먼저 듣고 아기 방 앞으로 달려가 서있기도 했다. 아기 울음소리 알람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는 보리까지 셋이 함께 아이를 키웠다.


보리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만큼 보리의 행복한 견생을 바란다. 또 항상 건강하기만을 빈다.
우리가 유엔은 아니지만 안보리의 평화와 안전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날까지 지켜줄 것이다.

안치원·경기 용인시 수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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