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역 앞 '알짜부지'에 15층 규모의 대형 문화시설 건립을 추진 중인 가운데 예술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부지는 2010년부터 국립극단이 사용해 왔는데 이 공간에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연극계는 기존 공간을 뺏기는 것에 대해 비판하며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무용 등 다른 분야에선 전용극장 건립을 요구하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청회를 3차례 개최했지만 사실상 예산, 사업계획을 다 정해놓고 공청회를 '요식행위'로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고성 오간 공청회..예술계 대립
27일 문화계에 따르면 문체부는 지난 24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 공연계 공청회'를 진행했으나 연극, 무용, 뮤지컬 관계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가며 갈등을 빚었다.
현재 해당 공간은 유인촌 문체부 장관 재임 시기인 2010년에 국립극장 소속에서 국립극단으로 독립해 재단법인화됐다. 연극인들의 경우 그전까지 국립극장 소속 단원으로 일종의 공무원 신분이었으나 이후 법인화되며 사정이 나빠졌다.
연극계는 "당시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별도로 분리되며 향후 연극 전용극장 건립 등을 약속 받았다"며 "하지만 이후 10년 넘게 말이 없다. 이번에 문체부가 약속도 지키지 않고, 복합문화공간 건립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계동 복합문화공간 조성사업은 해당 부지를 포함해 7905㎡ 규모로 대공연장(1200석), 중공연장(500석), 소공연장 3개(300석, 200석, 100석) 등을 갖춘 지상 15층, 지하 4층 규모의 복화문화시설을 건립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연극계 원로 인사는 "정부가 돈이 되는 뮤지컬 공연(1200석)을 밀어주고, 문화시설 명목 아래 상업시설을 놓고 임대료 장사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연극계는 비상대책위원회 조직, 문체부 항의 방문 등을 진행하며 '서계동 개발 사업 원천 백지화'까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업 자체를 백지화하기보다 복합공간 혹은 별도공간에 연극을 위한 전용극장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반면 무용계, 뮤지컬계 등은 연극계와 미묘하게 입장이 다르다. 공청회에 참석한 무용계 한 관계자는 "올림픽 등 국가 행사마다 무용인들이 최선을 다해 무대를 꾸몄지만 아직 국내에 무용 전용극장 하나 없다"며 "이번 기회에 서계동 혹은 다른 곳에라도 무용 전용극장 건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뮤지컬 관계자는 "해당 공간이 연극인들뿐 아니라 국민 전체가 문화적 다양성을 향유할 수 있는 공공재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청회는 요식행위?
문체부는 올해 2월 24일, 5월 25일, 그리고 지난 24일 총 3차례에 걸쳐 공청회를 열었다. 다양한 예술계의 의견을 듣고 사업에 반영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미 경제성 평가를 마치고, 1244억원 예산까지 확정해 2023년 7월 착공, 2016년 12월말 준공하다는 목표를 밝힌 후였다.
사실상 연극계는 이를 '통보'라고 봤다. 공청회의 취지는 사업 확정 전에 이해당사자 등의 의견을 듣고 이를 반영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이미 예산까지 확정해 이견을 반영하려면 국회에서 논의 등 절차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기존 공간을 뺏기게 된 연극계의 불만이 큰 상황이지만 다수 시민들 입장에서는 서울역 인근에 대형 공연 시설이 생긴다는 것은 나쁜 소식만은 아니다. 서계동 2개 국립극장(8개 공연) 이용객의 경우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1만6000여명 수준에 불과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연간 이용자 기준 충무아트홀(52만6000명),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41만6000명), 성남아트센터(46만5000명), 블루스퀘어(49만명) 등을 고려할 때 서계동 문화공간이 조성되면 연간 87만4000명이 이용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이어 "복합문화공간이 조성될 경우 생산유발 효과 2300억원, 부가가치 900억원, 고용유발효과 1800여명 등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