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사극과 멜로드라마의 공존 '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정훈희 노래 '안개' 가사에서 모티브
여주인공은 오로지 탕웨이만 생각
"범접하기 어려운데 사랑스러워"
박해일과도 처음… 실제 모습에 끌려
"작정하고 만든 영화, 3번 보길 추천"
정훈희 노래 '안개' 가사에서 모티브
여주인공은 오로지 탕웨이만 생각
"범접하기 어려운데 사랑스러워"
박해일과도 처음… 실제 모습에 끌려
"작정하고 만든 영화, 3번 보길 추천"
하지만 올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 감독은 "자신은 언제나 로코(로맨틱 코미디) 감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 15세 관람가를 받은 탕웨이, 박해일 주연의 '헤어질 결심'은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멜로영화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 대해 "자기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고 노력한 사람들의 로맨스" "인생을 살아본 사람만이 이해 가능한 사랑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그는 "주연배우들도 나와 처음 일했다"며 "미묘하고 섬세하고 우아하고 고전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은 전찬일 평론가의 표현을 빌면 "오감을 자극하는" 박찬욱식 멜로영화다. 박찬욱 영화 특유의 미장센과 아이러니가 살아있는 수사극이면서도 멜로극인 이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두 남녀의 사랑이 파도처럼 밀려와 관객을 덮치며, 엔딩 테마곡 '안개'와 어우러져 애틋한 감흥을 안겨준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조선족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면서 시작된다. 도시에서 시작된 영화는 곧 하늘을 찌르는 암봉의 살인사건과 산속처럼 복잡하고 쉬이 드러나지 않는 두 남녀의 마음의 파고를 거쳐 기암괴석을 품고 있는 드넓은 바다를 마지막으로 끝난다. 범죄와 연루된 매혹적인 여자를 사랑하게 된 형사의 이야기로 필름누아르 장르를 떠올리게 한다. 박해일이 연기한 형사 캐릭터는 기존의 한국영화 속 형사와 180도 다른 옷차림과 말투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그는 밑바닥 인생에 가까운 서래에겐 기존에 보지 못한 '품위있는 남자'로 각인된다. 그런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게 분명해 보이는 해준은 잠복근무를 빌미로 그녀의 집을 엿보고, 피의자 취조를 하다가 고급 초밥을 주문해 마치 데이트하듯 식사한다. 그런 남자의 호의가 싫지 않은 여자는 불쌍한 여자인지 아니면 남자를 '붕괴'로 이끌 '팜므파탈'인지 아리송하다.
범죄수사극의 형식을 띤 이 독특한 멜로드라마는 사랑표현 또한 색다르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문제의) 휴대폰을 깊은 바다 속에 던져라"는 남자의 대사는, 여자에겐 반복해 듣고 싶은 사랑 고백이며, 죽은 남편의 시체를 질질 끌어다가 물로 씻기는 여자의 행동은, 피 냄새를 역겨워하는 연인을 위한 그녀만의 배려다. 피의자를 호송하는 경찰차 안에서 수갑을 찬 남녀의 살짝 포개진 손은 서로의 호감을 확인하는 순간이며, 립밤을 발라주는 여자의 행동은 남자와 키스하고 싶은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박 감독은 "100% 수사영화이자 100% 로맨스영화"라며 "용의자를 만나고 심문하는 형사의 업무가 이 영화에선 연애의 과정이다. (수사와 연애) 이 둘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라고 부연했다.
■박찬욱 "모든 것은 정훈희의 '안개'에서 출발"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바람이여 안개를 걷어 가다오/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모든 것은 안개라는 노래에서 시작됐다"고 밝힌 박찬욱 감독은 영화 또한 "가사를 음미하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훈희의 '안개'를 "어릴 적부터 좋아했다"며 "송창식도 숭배했는데, 최근에 그가 '안개'를 커버해 불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정훈희와 송창식 두 분을 모셔다가 듀엣으로 이 노래를 녹음하게 돼 감독으로서 보람을 느꼈다"고 감격해했다.
앞서 탕웨이는 박찬욱 감독에게 자신 인생의 한부분을 완성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탕웨이는 박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대본을 집필하기 전부터 염두에 뒀던 배우였다. 박해일 캐릭터가 스웨덴의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속 형사 캐릭터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탕웨이 캐릭터는 백지 상태에 가까웠다. 박 감독은 '색, 계' '만추' '황금시대'의 탕웨이에 대해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으면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이 느껴지는데, 웃고 말하면 사랑스럽다. 직접 만나보니 장난기도 있어 이 모든 면을 반영했다"고 말했다.
박해일은 '살인의 추억' '연애의 목적' 속 캐릭터와 다른 박해일의 실제 면모에 주목했다. 그는 "박해일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라며 "생각이 엉뚱한데 그것도 감추지 않고 다 드러내는 투명한 사람, 꼿꼿한데 긴장하지 않는 보기 드문 사람"이라고 평했다. "결국 작품에 대한 평가나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평가는 배우를 통해서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박해일과 탕웨이에 대해 많은 분들이 호감을 갖고 사랑스럽다고 이야기해서 감독으로서 뿌듯하다. "
앞서 박 감독은 언론시사 후 기자간담회에서 "탕웨이의 '독한 것' 대사에 웃음이 안 터져서 상처받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는 자신의 '유머코드가 관객에게 100% 다 통하는 것과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중 무엇을 더 원하느냐는 물음에 "그게 같은 게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다 통했으면 황금종려상을 받지 않았을까요?" 또 곱씹고 되새기고 이야기하고픈 다양한 메타포가 담긴 영화라 반복 관람이 기대된다는 질문에는 "3번 보면 좋겠다"고 바랐다. "전체적으로 한번 본 뒤, 한번은 해준의 관점에서, 다음은 서래의 관점에서 영화를 보면 좋겠네요."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