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ㆍ세종=뉴스1) 이광형 기자 = 국민의힘 소속 충북도의원 당선인들이 일을 냈다. 지난 27일 실시한 소속 당 의장 후보 선출에서 '상전'인 국회의원(당협의원장)들의 명(命)을 거부하고 소신투표를 결행했다.
이날 투표는 6·1지방선거에서 충북도의회 35석 중 국민의힘(28석)이 절대 다수의석을 차지해 사실상 의장을 선출하는 선거와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 선거가 국민의힘 지역 국회의원들의 세 싸움으로 변질됐다. 지난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정우택 의원(도당위원장)과 반 정우택(이종배 박덕흠 엄태영)간 형성된 감정싸움이 이번 도의장 선출에서 또다시 지역정가의 패권 다툼으로 이어졌다.
소속당 도의원 당선인 28명 중 반 정우택 의원 지역구 당선인들이 모두 13석인 데다 청주권 의장 후보들이 3명이 나선 점을 고려할 때 반 정우택 세력이 담합하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들이 정 의원 계보로 알려진 황영호 의장 후보(청주)를 낙마시키려는 명분은 '초선이 무슨 의장이냐'였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내세운 재선 후보를 지지하라고 지역구 의원들에게 하명했다.
하지만 의원들의 시각은 달랐다. 의장은 자신들을 대표하는 얼굴로 의회 위상과 권위를 상징하는 만큼 그에 맞는 능력과 품격을 갖춘 인물을 내세워야한다는 분위기가 사발통문처럼 나돌며 공감대를 이뤘다.
결국 '공천권이 있으니 지시하면 따르겠지'하는 마음으로 정우택의 지역세를 차단하고 도 의장을 수하에 놓으려 했던 반 정 의원 세력의 거사는 무산된 채 망신만 샀다. 놀라운 건 지역 당협위원장의 시녀 역할을 해 온 지방의원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다.
얼마 전 도지사 경선에서 리모컨처럼 움직였던 때와 달리 이번엔 당당히 자신들의 권리와 자존심을 찾은 것이다.
자신의 주권을 소신대로 행사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동안 관행으로 볼 땐 항명과 다름없다. 엄밀히 말하면 국회의원들의 지방의원들에 대한 '주권침해'이지만, 감히 공천권을 거머쥔 당협위원장의 지시를 거역했으니 자칫 괘씸죄에 걸려 곤욕을 치를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도 지방선거 공천 전이라면 예외 없이 낙천했을 게 뻔하다. 하지만 이번엔 상전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권리와 위상을 찾는 의미 있는 일을 했다. 초·재선을 떠나 의회의 권위와 위상에 맞는 후보를 의장으로 선택했다.
황영호 당선인은 비록 초선이지만, 그동안 기초의원과 정당활동을 하면서 본 정치역량과 리더십을 그들이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초대 통합청주시의회 의장을 지냈으며 전국지방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 대표회장을 지낸 보기드문 이력과 4년 전 당이 어려울 때 청주시장 후보로 출마하는 등 정치력을 겸비한 것도 신뢰를 주었을 것이다.
의장이 되면 본인을 위해 폼만 잡는 게 아니라 집행부 수장인 김영환 지사가 같은 당이라도 할 말을 하는 배짱과 자질을 갖췄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국민의힘 당선인들은 과거 지방권력을 빼앗겼을 때 일부 의회 수장의 무능과 노회함으로 의회 권위를 실추시켰던 것을 알고 있다. 어떤 의장은 마치 '이시종 지사 비서'라는 별칭까지 들을 정도로 거수기 역할에 충실했다. 또다른 의장은 홍위병처럼 행동하며 자신의 이권챙기기에 급급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번 충북도의회 당선인들은 이런 오욕의 의회를 반복하지 않고 권위와 위상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용기 있는 행동으로 '적임자'를 선택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일부터 도의회 수장 역할을 할 황영호 당선인은 이점을 바로알고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직무수행에 충실해야 한다.
집행부를 견제·감시하는 대의기관 역할에 충실함은 물론이고 의정활동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탈행위로 혈세만 축내는 동료의원들에겐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아울러 국민의힘 지역 국회의원 4명도 여당 의원으로서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이젠 앙금을 털어 버리고 화합해야 한다.
도세도 약한 지역에서 여야가 각각 4석씩 갈려 정치력을 한 데 모을 수 없는 데다 여당마저 두패로 갈려 싸운다면 무슨 현안사업이 제대로 추진되겠는가. 국민의 공복인 선출직 공직자를 자처한 만큼 노회한 정치보다 노련한 정치로 품위를 지키며 권한과 책임을 다해주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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