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급정거한 자동차에 놀라 넘어진 아이가 다쳤다면 이는 운전자 책임일까. 차에 부딪힌 것과 상관없이 넘어진 아이에 대해 병원에 데리고 가는 등 추가 조치 없이 현장을 떴다면 '뺑소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치상)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무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2020년 4월 오후 트럭을 운전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지나는 중에 갑자기 뛰어든 9살 아이를 보고 급정거했다. 당시 아이는 횡단보도 인근에서 무단횡단을 하던 상황으로, 급정거한 A씨 차량의 앞쪽에서 넘어져 오른쪽 무릎을 다쳤다.
아이가 넘어졌다 일어나는 것을 본 A씨는 차에서 내려 아이의 상태를 물었고, 아이가 '괜찮다'며 인근 상점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차에 타 현장을 벗어났다.
그런데 검찰은 A씨가 아이 무릎을 차량으로 치고도 병원에 데려가는 등 추가 조치 없이 사고 현장을 벗어났다고 보고 도주치상, 즉 뺑소니 혐의로 기소했다. 실제로 사고 다음날 병원을 찾은 아이는 전치 2주의 진단을 받고 치료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 혐의를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씨 차량이 아이와 물리적으로 충격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A씨가 당시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급정거할 수 있을 정도로 서행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A씨 주의의무위반 사실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교통사고를 야기할 운전자의 주의의무 위반 사실이 성립하지 않는 이상, 뺑소니 혐의도 당연히 무죄라는 취지다.
그런데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비록 자동차가 보행자를 직접 충격한 것이 아니고 보행자가 자동차의 급정거에 놀라 도로에 넘어져 상해를 입은 경우라고 할지라도,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교통사고 발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봤다.
즉, A씨는 횡단보도 부근에서 도로를 횡단하려는 보행자가 흔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제한속도 아래로 속도를 더욱 줄여 서행하고 전방과 좌우를 면밀히 주시해 안전하게 운전함으로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업무상 주의의무가 있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A씨가 횡단보도 부근에서 안전하게 서행했다면 사고 발생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피고인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사고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파기환송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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