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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거래 신고 의무 완화"… 외국환거래법 23년만에 손본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05 18:16

수정 2022.07.05 18:16

달러유출 억제 중심 외환법 개편
지급·수령 사전신고제 대폭 개선
업권별 외국환 업무 범위도 조정
신종 결제수단 제도권 포함 검토
"자본거래 신고 의무 완화"… 외국환거래법 23년만에 손본다

#1. 해외 취업에 성공한 A씨는 은행에 월세 보증금 등 현지 정착 비용 7만달러를 송금해 줄 것을 요청했다가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5만달러 이상이거나 사용목적이 확인이 안된 경우, 달러 송금이 힘들다는 것이다. 시일이 촉박해 1만달러만 휴대한 후 출국하고 나머지 6만달러는 어머니가 한국은행에 대외지급수단매매신고를 한 후 현지에서 1개월 지난 뒤 겨우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서류만 매매신고서, 사유서, 인감증명서, 출입국사실증명, 재직증명서, 납세증명서 등 11개 이상이었다.

#2. B기업은 C은행을 통해 해외투자 신고를 하고 태국 소재 기업의 지분 50%를 취득했다. 이후 4만달러 상당의 기계도 현물출자를 했다. 하지만 현물출자분은 사전 신고의무 위반이 적용돼 과태료 100만원을 납부했다. 이와 별개로 매년 B기업은 사후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A씨와 B기업이 해외에 달러를 보내는 과정이 어려운 것은 외화유출 억제가 기본 골격인 외국환거래법의 적용을 받아서다. 1961년 외국환관리법을 폐지한 후 지난 1999년 제정한 외국환거래법은 단계적으로 외환자유화 조치를 실시해 왔지만 큰 틀은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23년만에 외국환거래법 전면 개편에 나선다. 자본거래 신고 의무 완화, 업권별 외국환 업무 범위 조정, 신종 결제 수단에 대한 외국환 규정 개정 등이 검토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는 5일 서울 영등포구 수출입은행에서 '신 외환법 제정방향 세미나'를 개최했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개회사를 통해 "국민과 기업의 외환거래 걸림돌이 되는 과도한 규제를 철폐하고 복잡한 거래절차는 쉽고 단순하게 바꾸는 한편, 효과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위기 대응을 철저히 할 수 있도록 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복잡한 자본거래 신고 의무 완화

정부가 신외환법 제정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사안은 자본거래 신고 의무 완화다. 해외로 송금하거나 다른 나라에 투자하려고 할 때 각종 신고를 의무화한 조항을 대폭 완화한다. 해외취업에 성공한 A씨나 해외직접투자에 나선 B기업 사례 처럼 곤란한 상황을 덜 겪게 하겠다는 것이다.

김성욱 기재부 국제금융국장은 이날 '신외환법 제정 필요성 및 기본방향'이라는 제목의 주제발표에서 "자본거래 및 지급·수령 단계의 사전신고제를 대폭 개선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업권별 외국환 업무 범위 조정도 법 개정 포함 사항이다. 핵심은 '동일 업무-동일규제' 도입이다. 예를 들면 현재는 은행과 다르게 증권업 등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환전·송금 업무가 제한된다. 예를 들면 해외유학생에게 생활비를 6만달러 송금할 경우, 외국환은행(시중은행)은 송금이 가능하지만, 금융투자회사 등 투자매매업자는 연간 5만달러를 초과하면 불가능하다. 김 국장은 "기준을 충족하게 되면 소비자 선택권 확대 및 금융발전 차원에서 개별 금융기관의 업무범위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업권별 형평성을 개선하고 핀테크 등 새로운 금융업이 속속 등장하는 금융 환경을 반영, 신외환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금융투자업계 등의 요구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다만 토론자로 나선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권-비은행권간 외환규제의 비대칭성 개선 때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관리능력과 재무적 안정성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신종 결제 수단을 제도권에 포섭하는 방안도 법 내용에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도 이날 제기됐다.

외국환은 통화가 다른 국가 간의 결제수단을 통칭하는 말이다. 법정 통화 등의 지급수단과 증권, 파생상품, 채권 등이 외국환으로 규정된다. 외국환거래법이 열거주의를 택해 그 밖의 결제수단은 제도 바깥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국환거래법 현황과 개편 필요성'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앞으로 중앙은행이 디지털화폐(CBDC)가 국가간 결제에 활용될 경우, 외국환거래법과의 정합성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의 디지털화 가속화로 새로운 대외지급 수단 및 방법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외국환거래법이 이에 대한 새로운 규율방법을 모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급격한 자본유출 가능성 대비도 필요

방 차관은 이날 개회사에서 신외환법 추진 방향과 관련, "(새로운 법이 제정되면) 자유로운 외환거래가 최대한으로 허용되는 만큼 급격한 자본유출 등 다양한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체계적 정합성 확보 및 이용자 편의 제고를 위한 외국환거래법령·규정 개편방안'이란 주제의 발표에서 "외국환거래법의 목적은 외국환정보의 집중과 관리를 1차적 목적, 비상상황에서의 국가의 개입을 통한 대외거래의 정상적 발전의 도모를 2차적 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한국적 상황에 맞춰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mirror@fnnews.com 김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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