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1) 노경민 기자 = 지난 6월23일 오후 5시 한 여성이 투신하겠다며 부산 북구 구포대교 난간에 매달렸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도로 위에 있던 길고양이 사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오해를 빚어 위험천만한 소동으로 이어졌다.
1.1m 높이의 난간에 1시간 정도 매달린 이 여성은 다행히 경찰의 설득 끝에 안전하게 구조됐다. 소방이 추락 지점에 미리 에어매트를 설치하긴 했지만 당시 강풍으로 인해 자칫 다른 지점에 추락했다면 목숨을 잃을 뻔한 아찔한 사건이었다.
부산에서 구포대교는 과거부터 투신 사건이 끊이지 않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구포대교 투신과 관련해 18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구포대교는 사업비 830억원이 투입돼 1993년 개통됐다. 길이 1.6km, 폭 30m에 왕복 6차로 교량으로, 대저생태공원 및 낙동강둔치공원, 도시철도역과 연결된 계단과 보행로가 있어 접근성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보행로의 난간 높이가 1.1m에 불과해 사고를 예방하는 안전 시설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데도 관할 지자체에서는 난간을 높여도 사고 예방에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취재진이 현장을 살펴본 결과 난간은 키 180cm의 취재진의 허리 높이밖에 되지 않았다. 어린아이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높이다.
교량과 맞닿아 있는 낙동강변에 추락할 시 수색 작업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예전부터 난간 높이 상향에 대한 목소리가 여러 차례 제기돼 왔다.
책임 주체도 다소 복잡하다. 교량 구조물 보수·보강은 부산시 건설안전시험사업소가 맡고 있고, 부속 시설물(난간) 파손 관리는 북구청이 담당하고 있다.
시 건설안전사업소는 투신 예방을 목적으로 난간 높이 상향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관할 지자체가 높이 조정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구는 도로안전시설물 표준 규격에 따라 현 난간 높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년 전에도 정부 부처, 부산시와 함께 난간 높이 상향와 관련해 회의를 열었지만 예산 문제 등으로 사실상 무산됐다.
구 관계자는 "난간을 높인다고 해도 투신 사건이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구포대교에서 내려오는 램프 구간에 운전자들의 무단 쓰레기 투척 문제가 있어 2m 이상 높이의 난간을 설치했지만 보행로 난간까지 상향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긴급 상황 대처에 필요한 모니터링용 폐쇄회로(CC)TV도 부족하다. 약 1.6km 길이의 교량에 CCTV는 단 3대뿐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으면서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는 투신자살 발생 다발 지역에 구포대교를 포함하기도 했다.
여러 논의 끝에 지난해 1월 보행로에 생명지킴이 전화기 4대가 설치됐다. 전화기에는 부산광역자살예방센터와 119상황실 등을 호출할 수 있는 2개 버튼이 있다.
현재까지 자살예방센터에 총 17건의 상담 전화가 걸려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상담을 마치고 극단적 선택을 단념한 사람들도 있었다.
전화기를 설치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관계자는 "10년 전 마포대교에 처음으로 SOS생명지킴이 전화기를 설치해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며 "교량 높이가 낮을수록 투신 사고 위험이 커진다. 구포대교에 전화기를 설치할 때 지자체에 난간 높이 상향을 건의했지만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시 교량 중 투신 사고율이 두번째로 높은 한강대교의 경우 지난해 난간 높이가 1.2m에서 1.65m로 상향되면서 사고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교량안전과 관계자는 "투신 사고를 막기 위해 난간을 0.45m 정도 높였는데 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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