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귀거래사] 미생물로 키운 감귤…꿩도 알아본 친환경 땅

뉴스1

입력 2022.07.09 08:01

수정 2022.07.09 08:01

제주 서귀포 남원읍 ‘자연으로 농원’의 오승훈 대표(50).© 뉴스1
제주 서귀포 남원읍 ‘자연으로 농원’의 오승훈 대표(50).© 뉴스1


'자연으로 농원'의 오승훈 대표가 재배한 제주 서귀포 남원읍 과수원의 감귤이 익어가고 있다.© 뉴스1
'자연으로 농원'의 오승훈 대표가 재배한 제주 서귀포 남원읍 과수원의 감귤이 익어가고 있다.© 뉴스1


오승훈 '자연으로 농원' 대표의 제주 서귀포 남원읍 과수원에 꿩이 알을 낳은 모습. © 뉴스1
오승훈 '자연으로 농원' 대표의 제주 서귀포 남원읍 과수원에 꿩이 알을 낳은 모습. © 뉴스1


[편집자주]매년 40만~50만명이 귀농 귀촌하고 있다.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을 통해 위로받고 지금과는 다른 제2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서다. 한때 은퇴나 명퇴를 앞둔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겼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30대와 그 이하 연령층이 매년 귀촌 인구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농촌, 어촌, 산촌에서의 삶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뉴스1이 앞서 자연으로 들어가 정착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비 귀촌인은 물론 지금도 기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은 많은 이들을 위해.

(제주=뉴스1) 홍수영 기자 = “내가 태어난 해 심은 감귤나무라니. 부모님의 애틋한 마음을 느꼈죠.”

제주 서귀포 남원읍 ‘자연으로 농원’의 오승훈 대표(50)는 몇 년 전 감귤나무 식재년도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고향 땅 제주에서 물려받게 된 부모님 과수원의 나무들이 자신과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만 해도 ‘대학나무’로 불리던 감귤나무는 부모님께는 어려운 생활 속 구세주와 같았을 것이다. 오 대표가 감귤나무를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된 이유다.

오 대표는 1990년 서울에 있는 대학을 진학하며 고향 제주를 떠났다. 십여 년 만에 제주에 돌아온 뒤에도 직장생활을 한 그는 간간이 부모님의 밭일을 돕긴 했지만 바로 귀농을 하진 않았다.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면서도 농사일을 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바꾼 건 2016년 1월말 제주공항 마비 사태까지 갔던 유례없는 폭설이었다.

오 대표는 “처음엔 가볍게 생각한 면이 있었다. 그런데 대규모 폭설을 겪고 나니 농사일에 집중해야겠더라. 그때 다른 일은 모두 접고 전업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감귤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크게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친환경 농사를 할 것, 두 번째 직거래 판매를 하는 것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장기적인 비전을 봤다.

그는 “처음엔 어머니도 이해하기 어려워하셨다”며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니까 과수원에 풀이 무성해질 게 아닌가. 어머니 눈엔 제대로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동네 창피하다’고 화도 내셨다”고 웃었다. 이젠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다. 그동안 흔들리지 않고 친환경 농사에 공을 들인 아들을 믿어주신다고 한다.

오 대표는 친환경 농사를 시작하며 특히 미생물에 주목했다. 그가 적용한 GCM(젤라틴·키틴 미생물) 농법은 작물에 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나 해충의 알껍질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젤라틴과 키틴 성분을 분해해서 먹이로 살아가는 미생물을 활용한 친환경 농법이다.

오 대표는 “사람도 평소에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감귤나무 역시 미생물을 지속 투입해 토양의 질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라며 “바로 효과가 눈에 띄지는 않지만 미생물 사용 후 1~2년 후엔 나무가 건강해지는 게 보인다”고 말했다.

미생물의 분해 능력으로 비료를 잘 흡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자 나뭇잎 색이 진해지는 등 감귤나무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땅 속은 볼 수 없어도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건강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친환경 감귤밭을 가장 먼저 알아본 건 동물들이다. 오 대표의 과수원은 어느새 동네 꿩들의 놀이터이자 안식처가 됐다. 5~6월 산란기에는 꿩들이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곤 한다. 꿩들이 벌레도 잡아먹으니 일석이조다.

그는 “꿩은 환경에 민감해 아무 곳에나 알을 낳지 않아요. 그만큼 과수원이 건강해진 것”이라며 “땅을 밟아보면 폭신폭신하다. 지렁이가 많아지고 땅속에 숨구멍을 내면서 공기가 잘 통하게 되고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된 거죠”라고 말했다.

이런 그의 선택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건 감귤 맛으로 증명됐다. 2017년부터 3년 연속 제주감귤박람회에서 특별상, 친환경 금상을 잇따라 수상하는가 하면 2020년엔 제주도우수농업인상도 받았다. 미생물을 활용한 유기농 감귤농업으로 인정받아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건강한 땅과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건 동물만이 아니다. 먼 길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먼저 과수원을 찾아온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감귤도 따고 맛있는 귤까지 먹을 수 있으니 관광객도 찾는 과수원이 됐다.

오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하면서 친환경 농사 과정을 보여주니 소비자들이 믿어주시는 것 같다. 건강한 과일 때문에 왔다가 맛까지 좋으니 계속 찾아주시더라. 한번 먹어보신 분들은 매년 재주문을 하신다”고 말했다.


다만 오 대표는 초보 농부들이 처음부터 친환경 농사를 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제빵을 할 때도 반죽부터 제대로 배워야 하는 것과 같다.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농사의 기본을 알고 천천히 친환경 농법을 배워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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