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사우디의 첫 역사적 만남으로 기록된 이날은 진기한 풍경이 많았다고 한다. 아지즈 국왕은 양떼를 몰고 와 배에서 도축해 루스벨트에게 점심을 대접했다. 미국 해군 병사들의 활약을 다룬 홍보영상이 상영되자 아지즈 국왕은 쿨쿨 낮잠을 잤다. 이 만남은 3일이나 지속됐다. 사우디는 안보를, 미국은 석유를 챙겼다. 양국의 동맹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우디 왕조가 들어선 지 이제 90년 세월이 흘렀다. 지금의 실권자는 초대 국왕의 손자이자, 현 국왕의 차남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다. 그는 2017년 사촌형을 밀어내고 지금의 자리를 꿰찼다.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뜻에서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통한다. 집권 초 사우디의 금기들을 깨부수면서 개혁군주 이미지로 서방에 이름을 날렸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사건 배후로 지목된 탓이다.
당시 가장 큰 분노를 표출했던 이들 중 한 명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다. 바이든은 대선 기간 사우디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 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랬던 바이든이 지난주 중동에 석유증산 협조를 구하러 사우디를 들렀다가 역풍에 처했다. 회담장에서 "사우디는 여전히 왕따인가"라는 기자들 질문에 바이든은 답을 못했다. 그 순간 왕세자의 미소 짓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서방 언론은 '우쭐해하며 내뱉는 비웃음(Smirk)'이라고 표현했다. 바이든은 증산 협조도 퇴짜를 맞았다. 자원 앞에 미국도 한없이 낮아지고 있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