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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약이 〇〇하지 않으면 중병이 낫지 않는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23 06:00

수정 2022.07.24 13:45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금원사대가 명의들로 유완소, 장종정, 이동원(왼쪽부터)
금원사대가 명의들로 유완소, 장종정, 이동원(왼쪽부터)

옛날 어느 마을에 유(劉)씨라는 성을 가진 의원이 있었다. 유의원은 독한 약재로 처방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약방문 앞에도 ‘이독치독(以毒治毒)’이라는 문구를 걸어 놓고선 대놓고 독약을 처방했다. 간혹 죽을 환자도 살렸다는 명성 때문에 많은 의생들이 제자를 자처했다.


한 제자가 유의원에게 물었다. “스승님, 이독치독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유의원은 “모든 병은 독(毒)이고 약도 독이니 독한 약을 써야 독한 병이 낫는 법이다. 서경에 이르기를 ‘약이 명현(瞑眩)하지 않으면 중병이 낫지 않는다’고 한 말을 실천하는 것이다.”
제자는 “약이 명현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입니까?”
유의원은 “명현이란 눈이 캄캄해지고 어찔해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약이 명현하다는 것은 아주 독한 약을 썼을 때 쓰러질 것처럼 어질거리고 혼미하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만 병이 잡힌다. 마치 전쟁에 비유하자면 살상력이 큰 무기로 적군을 인정사정없이 마구잡이로 죽여야 이길 수 있는 것과 같다.”라고 했다.

유의원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고 눈빛에 자애로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문제는 유의원의 환자들은 처방을 받아 복용하면서 거의 죽기 일보 직전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다. 변비약을 처방해서 설사를 하면 몇일 간을 그치지 않아서 항문이 헐 정도였고, 열증(熱症)에 땀을 내는 약을 쓰면 비가 오듯이 쏟아지면서 탈수에 빠졌다. 객담(喀痰)을 빼는 약을 처방하면 하루종일 담즙까지 토하고 위장이 뒤집힐 정도로 토를 했다.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을 쓸 때면 온 몸에 성한 피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발진과 진물로 뒤덮기 일쑤였다. 어떤 환자들은 약을 복용하면서 위가 쓰리고 아파서 약을 전혀 입에도 대지 못했다.

환자들이 “의원님, 약이 너무 독하고 원래 없던 증상들도 마치 하늘의 구름 모양처럼 변화무쌍하게 나타나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으면 “당신의 병을 치료하려면 명현해야 하오. 아직도 원래 있던 증상이 여전한 것 같으니, 약을 더 세게 처방을 해야 할 것이요.”라면서 명현이란 말만 반복하면서 더욱더 독을 약을 처방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유의원은 명현의원이라는 별병까지 생겼다. 환자들은 의원이 자신있게 말하니 그래야 하나보다 하고 처방대로 약을 복용했다.

그런데 유의원에게 처방을 받은 환자들을 보면 열에 셋은 더 이상 약을 먹기를 포기했고, 열에 셋은 구사일생으로 건강을 회복했지만, 나머지 열에 셋은 결국 죽었다. 사실 치료에 실패하거나 죽은 자들은 말이 없었고 죽다 살아난 환자들만이 유의원을 칭송하고 다녔다. “명현의원이 나를 살렸네. 약은 명현하게 써야 하네”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이들 또한 독한 약 때문에 몇 차례 죽을 지경을 경험했고, 자생력으로 부작용과 병을 이겨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옆 마을에는 장(張)씨라는 성을 가진 의원이 있었다. 장의원은 유의원과 쌍벽을 이루는 의원이었지만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천양지차(天壤之差)였다. 장의원은 허실(虛實)과 한열(寒熱)에 따라 변증을 해서 약물의 처방을 다양화했다. 무엇보다 모든 병을 치료하는 약물은 위장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정기(正氣)를 해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병도 중시했지만 무엇보다 환자의 몸을 주의깊게 살폈다. 그래서 장의원에게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병이 좀 천천히 낫더라도 명현이라고 할만한 별다른 부작용이 없었다. 장의원은 그 어떤 독한 약을 처방할지라도 항상 환자의 정기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장의원에게는 이(李)씨 성을 가진 젊은 제자가 있었는데, 벌써 수십년을 약방에서 숙식해 왔던 터라 이의원의 의술은 이미 스승의 경지를 넘어설 정도였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옆마을의 유의원님의 진료행태에 걱정이 많습니다. 유의원님에게서 진료를 받다가 이곳 약방으로 건너온 환자들을 보면 죽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입니다. 오장육부는 엉망이 되어있고, 특히 비위(脾胃)가 약해짐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스승님과 쌍벽을 이루신 분인데, 스승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유의원도 훌륭한 의사다. 유의원의 의술은 마치 전쟁을 이끄는 장군의 패도(霸道)라 할 수 있어 그 자신감은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사실 서경(書經)에 명현(瞑眩)이란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서경은 의서가 아니다. 서경에 ‘중병에는 명현한 약을 처방해야 한다’는 것은 병의 뿌리가 깊은 중병에는 일부 독한 약을 일시적으로 처방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유의원의 의술을 따르는 의원들을 보면 모든 병을 대상으로 명현만을 들먹이고 있고 나으면 자신의 의술 때문이라고 하고, 병세가 악화되면 약을 명현하게 사용하지 못해서라든가, 결국 죽게 되면 결국 난치병이나 천명(天命)을 다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니 환자는 안중에도 없고 병만을 쳐다보는 폐단이 있도다.”
장의원은 이어서 “요즘 보면 시장에서 파는 이름 모를 환약을 먹으면서 부작용이 생기거나 서역(西域)에서 들어온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서는 뾰루지가 나도 명현이라고 하면서 좋아하면서 더 많이 먹고 더 자주 발라야 한다고들 하니 서경의 한 문장이 이처럼 사람들을 미혹(迷惑)하게 함이 한스럽구나.”하면서 걱정어린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런데 어느 날,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유의원이 자신의 딸이 아파 과년한 딸을 데리고 장의원을 찾아온 것이다. 딸의 안색은 파리했으면 기력이 하나도 없이 탈진해 있었고 진맥을 해보니 촌구맥은 실낱처럼 미약했다.

장의원은 깜짝 놀라며 “유의원님~ 항상 저의 처방이 미온하고 병을 치료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면서 비판만 하시더니 어찌된 영문이요?”라고 물었다.

유의원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딸이 몇 일간 밭일을 호되게 한 후로 배가 불러오면서 팔다리에 부종이 생겨 먼저 강력한 이뇨효과가 있는 축수약(逐水藥)를 처방했다. 그러자 계속 소변을 보면서 부종은 빠지더니 이제는 숨이 찬 천급증(喘急症)이 생겨서 다시 강한 하기약(下氣藥)을 처방했더니 이제는 밥을 먹지 못했고 명치가 답답한 증상이 생겼고, 다시 막힌 기운을 뚫어주는 파기약(破氣藥)를 썼더니 설사를 하면서 몸져누웠다는 것이다.

딸아이는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계속 설사를 하고 이렇게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 더이상 독한 약을 처방할 수 없어 염치없이 데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장의원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명현한 약이 아니면 병을 치료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환자들에게 독한 약만을 처방했는데, 제 처방을 복용하면서 고통받은 녀식을 옆에서 밤새 지켜보니 병이 아니라 약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소. 이제 더이상 명현을 견디라는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소이다.”라는 것이다.

유의원의 그 자신감 넘치는 눈빛도 온데간데없었다.

장의원은 제자인 이의원과 함께 딸아이를 진찰했다. 진찰을 마치자 장의원은 제자에게 “어찌 변증(辨證) 되었느냐?”하고 물었다. 제자는 “환자는 음식과 노권(勞倦)으로 인해 발생한 비기허증(脾氣虛症)으로 인한 중기부족(中氣不足)으로 사려됩니다. 따라서 비위와 폐장의 기능을 되살리고 중기를 끌어 올리는 약재를 처방해 보면 어떠실지요. 비장을 되살리니 복부창만과 팔다리의 부종은 사라질 것이고 폐기가 살아나니 천급증도 가라앉을 것입니다. 이렇게 중기만 되살아난다면 나머지 겸증은 다시 어떤 처방을 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맞다. 그래서 처방이름이 무엇이냐?” 제자는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입니다.” 스승인 장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던 유의원은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순한 약재들로만 이루어진 처방이 의심쩍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딸아이의 증상은 보중익기탕을 복용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었다. 마치 꽃봉오리가 하루아침에 활짝 펴 오르듯 살아난 것이다.

유의원은 이들의 의술에 탄복을 했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딸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자 유의원은 자신의 약방 앞에 붙어 있는 ‘以毒治毒’이란 현판을 떼어 버렸다. 이후로는 명현이란 말로 환자들을 다그치는 법도 없었다.

환자가 명현한 처방을 부탁하면 “명현은 없소이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이후 유의원은 장의원과 가까운 거리에서 한 환자를 두고 협진하면서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간의 의술을 본받아 실증(實症)에는 일시적으로 강한 약을 쓰면서도 정기를 해치는 일이 없었고, 허증(虛症)에는 부드럽게 보(補)하는 치료법을 택했다. 이로써 환자들은 명현한 독한 약 때문에 고통받거나 죽은 경우는 결코 없었다.

*글쓴이 주; 유의원은 유완소(劉完素), 장의원은 장종정(張從正), 이의원은 이동원(李東垣) 등 금원사대가 명의를 빗대어 이야기함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고금의통> 攻之不已, 則曰 ‘藥不瞑眩, 厥疾弗瘳.’ 必大攻之, 脾胃益傷而疾益篤, 技窮無措則曰難醫.(독한 약을 쓰고도 낫지 않으면 ‘약이 명현하지 않으면 그 병이 나을 수 없다’라면서 반드시 더 독한 약을 쓰니 비위는 더욱 상하고 질병은 더욱 위독해지며 의술이 궁하여 어찌할 수 없으면 결국 난치병이라고 말한다.)
< 비위론> 內傷不足之病, 茍誤認作外感有餘之病, 而反瀉之, 則虛其虛也. 實實虛虛, 如此死者, 醫殺之耳. 然則奈何. 補中益氣湯. (내상으로 인해 정기가 부족한 병을 외감으로 사기가 남아도는 병으로 오인을 하여 사하게 되면 그 허는 더욱 허하게 될 것이다.
실함을 더욱 실하게 하고 허함을 더욱 허하게 하여 죽게 되면 이는 의사가 살인을 한 것일 뿐이다.)
< 동의보감> 主劉氏者, 或未極劉氏之妙, 則取效目前, 陰損正氣, 遺害於後日者多矣. 能用二子之長, 而無二子之弊, 則治病, 其庶幾乎.(유완소의 설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혹 유씨의 오묘한 방법을 다 알지 못하면 눈앞의 효과는 있으나 남모르게 정기를 상하여 후일 해가 되는 때가 많다.
유완소와 장종정의 장점을 살리고 동시에 폐단을 없앤다면 병을 치료하는 것이 거의 완벽할 것이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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