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 유엔군이 중공군과 맞붙어 싸운 최초 현대전
피란민 10만여명 살려낸 '흥남철수작전' 성공으로 이어져
[파이낸셜뉴스]
피란민 10만여명 살려낸 '흥남철수작전' 성공으로 이어져
이날 VOA 방송 등 미 언론에 따르면 옴스테드 장군은 지난 20일 미 워싱턴DC 근교 버지니아주 애난데일의 자택에서 병원으로 이송된 뒤 숙환으로 별세했다.
미 뉴욕주 올버니 출신인 옴스테드 장군은 미 해병대 1사단 소속 병사로서 6·25전쟁에 참전해 활약 이후 41년 간 군 생활을 마치고 1989년 3성 장군으로 예편했다.
옴스테드 장군의 장례식은 오는 28일 버지니아주 콴티코의 미 해병대 기념 예배당에서 엄수되며 관티코 국립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17일간 함경남도 장진·함주군 일대에서 벌어진 6·25전쟁 기간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로 손꼽히며 특히 세계 전쟁사상 현대전에서 미 해병대 등 유엔군이 중공군과 맞붙어 싸운 최초의 전투라는 점에서 의의가 큰 사건이다.
장진호 전투는 당시 유엔군도 큰 피해를 보았지만, 중공군 제9병단에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 중공군의 공세적인 남하를 최소 2주 이상 중단시키고 이듬해인 1951년 3월까지도 중공군의 남하에 지장을 끼쳤다.
이로 인해 1950년 12월 15일부터 12월 26일까지 미군 10군단과 대한민국 국군 1군단 그리고 피란민 10만여명을 자유대한민국으로 철수한 '흥남철수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부모도 미군의 도움으로 흥남철수 때 월남한 실향민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전투는 영하 30도, 야간 체감온도 영하 40도 안팎까지 떨어지는 극심한 혹한 속에서 피·아 간 동사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했으며 미 해병대 1사단 2만5000명과 미 육군 4500명, 영국 해병코만도 300명 등을 포함한 유엔군 총 3만여명이 4배 이상의 병력인 중공군 제9병단 약 12만명을 상대로 중공군 격파와 퇴각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6.25전쟁 이후 미군과 유엔군, 40여년이나 지나 비밀해제된 중국의 자료에 의하면 장진호전투에서 유엔군 약 3만명 병력 가운데 사망 1029명, 실종 4894명 부상 4582명, 비전투원 손실 7338명 등 총합 1만7843명의 피해를 입었으며 중공군은 약 12만명 병력 중 사상자 1만9202명과 비전투손실 2만8954명 등 총합 약 4만8156명의 손실 입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2004년 12월 7일 미국 제1해병사단을 방문, 진주만 피습 63주년 기념식에서 "한국전 당시 미국 제1해병사단은 북한의 장진호 부근에서 중공군 10개 사단에 포위됐지만 적의 7개 사단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둬 해병대의 위대한 전통을 세웠다"고 연설한 바 있다.
한편,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의 후원을 받아 철저하게 중공의 시각에서 장진호 전투를 묘사하고 제작해 2021년 9월 30일 개봉, 중국 흥행 1위를 기록한 중국 공산당 애국주의 프로파간다 영화 '1953 금성 대전투(원제, 금강천)'는 이 전투가 중공이 항미원조(抗美援朝·한국전쟁의 중국식 표현) 최종 승리의 토대를 닦았다고 묘사했다. 지난해 2021년 9월 국내 한 영화 수입사가 이 영화를 수입, 국내 개봉을 시도하다가 반발과 비난에 부딪힌 뒤 "충분한 고민 없이 해당 영화를 수입한 데 대해 책임을 느낀다"며 사과문을 내고 상영을 철회한 바 있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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