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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한 여름날, 부인이 〇〇을 많이 먹고 냉증이 생겼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2.07.30 06:00

수정 2022.08.02 08:58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것을 이야기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 그려진 황기, 인삼, 부자(왼쪽부터)
본초강목에 그려진 황기, 인삼, 부자(왼쪽부터)

어느 무더운 여름날, 한 사대부 집안의 부인이 병에 걸렸다. 부인의 증상은 기운이 없고 피로감을 심하게 느꼈으며 팔다리는 서늘하고 냉했으며 추위를 탔다. 간혹 식은땀을 흘리면 음식도 잘 먹지 못했다.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인이 서병(暑病)에 걸렸을 것으로 생각했다. 서병은 더위를 먹은 병으로 일종의 일사병이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진찰에 나선 의원은 서병에 사용하는 처방으로 활석(滑石)이란 약을 군약으로 투여했다. 활석은 곱돌로서 약의 기운이 무겁고 차가운 성질이 있는 광물성 약재로 갈증과 가슴의 번갈(煩渴)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서 당시에 서병에 다용한 약물이었다.
그러나 부인의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다시 다른 의원이 진찰에 나섰다. 의원은 부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피로감을 호소하기에 기허(氣虛)로 인한 자한(自汗)으로 보고 황기(黃耆)를 다량 넣은 온보약(溫補藥)을 처방했다. 그랬더니 식은땀과 피로감이 줄어드는 듯했지만 팔다리의 싸늘함과 오한(惡寒)은 여전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허의원에게 진료를 청했다. 부인의 진료를 허의원이 맡았다는 소문이 나자 그간 치료를 담당했던 의원들도 함께 자리를 했다. 뭔가 다른 점을 배울만한 것이 있을까이기도 했지만 어디 한번 두고 보자는 심산으로 허의원이라도 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허의원은 도착하자마자 부인에게 어떻게 해서 이런 증상이 생긴 것인지를 물었다. 부인은 자신의 지인이 빙고(氷庫, 얼음창고)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아 일하는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 얼음을 가져다 주기에 며칠을 먹었다고 했다. 허의원은 “얼음을 먹기 전의 부인의 증상은 어떠했습니까?”하고 물었다.

부인은 “내 증상은 별게 없었네. 식사도 잘하고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네. 하인들은 그렇게 덥다고 하나 나는 바람이 잘 통하는 대청마루에서 쉬기만을 일삼았기에 그리 더위도 느끼지 않았네. 사실 나는 평소에 손발이 찬 편으로 더위를 그렇게 타는 체질도 아니네. 그런데 빙고에서도 얼음이 무척 귀하다기에 아깝기도 하고 해서 한 삼일 동안 좀 많이 먹었을 뿐이네.”라고 답했다.

허의원은 “여름철 얼음인 하빙(夏氷)은 성질이 대단히 차갑습니다. 차갑다는 것은 만져서도 차갑지만 그 내면의 기운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열(煩熱)이 나는 경우 일시적으로 약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름철 얼음을 먹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식보>에 기록되기를 ‘여름철에 얼음을 쓸 때에는 오직 얼음을 그릇 둘레에 놓아 음식을 서늘하게 하는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얼음을 그냥 깨뜨려 오랫동안 먹으면 냉병이 생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부인은 냉체질이면서 별다른 열증이 없는데도 얼음을 너무 많이 먹은 것이 원인일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허의원은 하녀에게 맨손으로 부인의 배 속살을 만져보게 했다. 하녀는 “배가 배꼽주위로 해서 얼음장처럼 차갑습니다.”라고 했다. 허의원은 이어서 부인의 진맥을 했다. “부인의 촌관척(寸關尺) 부위의 관맥(關脈)이 유독 가라앉고 느리며 힘이 없는 것을 보면 비위(脾胃)가 허약해져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비위는 팔다리를 주관하기 때문에 비위가 냉해지면서 팔다리는 무력해지고 혈류순환에 문제를 일으켜 팔다리가 서늘해지는 것입니다. 혹시 복통과 설사를 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라고 물었다.

부인은 “그렇지 않네. 복통과 설사는 없네.”라고 했다. 부인의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듣고서는 겉에서 지켜보던 의원들이 서로를 보면서 키득거렸다.

허의원은 주위 의원들의 비웃음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한번 진맥을 해 보더니 “부인은 분명 궐냉증(厥冷症)으로 판단됩니다. 궐냉증은 냉기가 몸 안에 머물러 결과적으로 팔다리까지 영향을 미치는 냉증을 말하는 것이지요. 뜨거운 약성의 부자(附子)를 처방하는 것이 좋겠소.”라고 했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한 의원이 물었다. “아니 복통과 설사도 없는데, 부인의 증상을 궐냉(厥冷)으로 진단을 해서 부자를 투약한다면 자칫 사경을 헤매게 할 수 있는 것 아니요?”라고 의구심을 표했다.

허의원은 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부자를 처방해서 달이게 한 후 자리를 물러났다. 보통 약재를 달이는 시간은 2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그런데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하인이 허의원을 찾았다. “의원님, 마님이 갑자기 배가 아파하면서 설사를 하십니다.”라는 것이었다. “내 이미 짐작했네. 걱정말고 내 약방문대로 약을 잘 다려서 좀 식힌 후에 천천히 복용하도록 하시게.”라고 침착하게 답했다. 옆에 있던 의원들도 신기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의원들이 허의원에게 물었다. “어찌 된 것이요?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할 줄을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이요?”라고 말이다. 허의원은 “진단이 제대로 된다면 앞으로 일어날 병증까지 알 수 있는 법 아니겠소. 또한 진단이 정확하고 처방 또한 제대로 되었다면 예후도 점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인은 내일이면 쾌차할 것이요.”라고 했다.

허의원의 말대로 부인은 약을 단 두 번 복용하고서는 제반 증상이 사라졌다.

허의원은 부인에게 “앞으로 무더운 여름철이라도 얼음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되옵니다. 간혹 사대부 양반들이 여름철 더위를 이긴다고 귀한 얼음을 깨물어 먹기도 하는데, 적은 양이라도 자주 먹게 되면 오히려 오장은 냉해지면서 열기를 바깥쪽으로 몰아내기 때문에 피부는 더욱 뜨거워지고 더위를 더 타게 됩니다. 특히 부인처럼 냉체질이면서 열증도 없는 상황에서 얼음을 너무 많이 먹게 되면 도리어 냉증에 시달리게 되니 더더욱 주의하셔야 합니다. 여름철이라도 기운이 따뜻한 식재료를 섭취하는 것이 좋고, 물도 너무 차지 않게 미지근한 물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앞으로 더욱 무더워질 텐데, 삼복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황기를 처방했던 의원이 허의원에게 물었다. “저도 기허(氣虛)로 진단을 해서 따듯한 기운의 황기를 처방했는데, 황기는 어찌 효과가 없었던 것이요?”
허의원은 “부인에게는 이미 냉증이 나타났기에 보기(補氣) 약보다는 보양(補陽) 약이 필요했던 것이요. 따라서 황기보다는 인삼을 처방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요. 황기를 막대기에 비유한다면 인삼은 몽둥이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의원이 다시 “그럼 요즘 여름철 즐겨 먹는 삼계탕에도 황기나 인삼을 넣는데 차이가 있겠습니다.”라고 물었다.

허의원은 “온성의 닭과 황기는 무난한 조합입니다. 황기라도 열체질이라면 한 두 번는 문제 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황기 대신 인삼을 넣는다면 그 온성은 열성으로 바뀌어서 인삼이 맞지 않는 체질에게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닭 자체도 열체질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육류이니 여기에 인삼이 더해지면 어찌 되겠소. 따라서 열체질의 경우라면 이열치열(以熱治熱)을 한다고 해서 무분별하게 삼계탕을 섭취하는 것은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평소 땀이 많고 몸이 뜨거운 열체질은 여름철 보양식으로 닭 대신 오리로 대신하고, 황기나 인삼을 서늘한 기운의 더덕이나 잔대(사삼)로 바꿔준다면 좋을 것이외다. 모든 음식이나 약재는 사람의 체질과 병증에 맞아야 효과를 보는 법이지요. 특정 계절이라고 한 가지 음식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삼복더위의 보양식도 마찬가지요.”
사람들은 허의원의 설명을 듣고 평소 손발이 차고 아랫배가 얼음장 같은 냉체질들은 “무덥더라도 얼음이나 생냉(生冷)한 여름과일이나 냉채를 주의해야겠소이다.”라고 했고, 평소 땀이 많고 얼굴이 붉으면서 더위를 참지 못하는 열체질들은 “여름이라고 해서 뜨거운 삼계탕을 무작정 즐겨 먹었으면 어쩔 뻔했소.”라고 하면서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다.

이후로 사대부 집안이라도 얼음을 함부로 깨물어 먹는 일은 없었다. 여름철 얼음은 주로 음식을 서늘하게 하는 용도로만 사용했고, 서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경우에만 일시적으로 먹는 약으로 사용했다. 복날에 하인들에게 내린 삼계탕은 체질에 따라서 섭취량을 달리했고, 열체질은 삼계탕 대신 시원한 국물로 초계탕으로 만들어 먹게 하거나 더덕오리탕, 잔대오리탕으로 대신하게 했다. 이로써 모두가 자신에게 맞는 보양식으로 여름을 더욱 건강하게 넘길 수 있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 부인대전양방> 開慶己未年七月間, 裕齋馬觀文夫人曹氏, 病氣弱倦怠, 四肢厥冷, 惡寒自汗, 不進飮食. 一醫作伏暑治之, 投暑藥; 一醫作虛寒治之, 投熱藥; 無效. 召僕診之, 六脈雖弱而兩關差甚. 裕齋問曰 : 此何證也? 僕答曰 : 以脈觀之, 六部雖弱而關獨甚, 此中焦寒也. 中焦者, 脾也; 脾胃旣寒, 非特但有是證, 必有腹痛, 吐瀉之證. 今四肢厥冷, 四肢屬脾, 是脾胃虛冷, 無可疑者. 答云 : 未見有腹痛, 吐瀉之證, 合用何藥治之? 僕答曰 : 宜用附子理中湯. 未服藥間, 旋卽腹痛而瀉, 莫不神之! 卽治此藥, 一投而差.(개경 기미년 칠월 중순 무렵에 유재 마관문의 부인 조씨가 병이 들었는데, 기가 약하고 피로감을 느끼며 사지가 싸늘하고 추위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며 음식을 잘 먹지 못하였다. 어떤 의사가 더위병으로 보고 치료하여 더위 먹은 것을 치료하는 약을 투여하였고, 다른 의사는 허한으로 보고 치료하여 열성의 약을 투여하였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다. 나를 부르기에 진찰해보니 비록 육맥이 모두 약하지만 양쪽 관맥의 약한 정도가 심하였다. 유재가 “이것은 어떤 병증인가요?”라며 물었다. 대답하기를, “맥으로 설명하자면 비록 여섯 군데의 맥이 다 약하지만 관맥이 유일하게 심하니 이것은 중초가 차가운 것입니다. 중초는 비장인데, 비장과 위장이 이미 차가우므로 특별히 이 증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복통과 구토 설사의 증상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사지가 싸늘한데, 사지는 비장에 속하므로 이것은 비장과 위장이 허냉한 것이므로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아직 복통과 토하고 설사하는 증상이 없는데, 어떤 약으로 함께 치료한단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부자이중탕을 쓰는 것이 옳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처방 후 아직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점차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하게 되었으니 신기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시 이 약으로 치료하였는데 한 번 투여하자 나았다.)
< 동의보감> 夏氷. 性大寒味甘無毒, 去煩熱. 食譜云 ‘凡夏用氷 只可隱映飮食令氣冷, 不可打碎食之, 當時暫快, 久皆成疾.’(여름철 얼음은 성질은 대단히 차고 맛이 달며 독은 없다. 번열이 나는 것을 없어지게 한다.
식보에 ‘여름철에 얼음을 쓸 때에는 오직 얼음을 그릇 둘레에 놓아 두어서 음식이 차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얼음을 그냥 깨뜨려서 먹지 말아야 한다.
먹을 때에는 잠깐 동안 시원하지만 오래되면 모두 병이 생긴다’고 씌어 있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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