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2552만주 등 3년간 6조 규모
동학개미운동 한창이던 때도 불법공매도
윤 대통령 "불법 뿌리 뽑아라" 대책 지시
동학개미운동 한창이던 때도 불법공매도
윤 대통령 "불법 뿌리 뽑아라" 대책 지시
[파이낸셜뉴스] #1. 20년째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박모(52)씨. 박씨는 "불법 공매도 가능성에 대해서는 설마했다"면서 "발생한 것도 짜증나고 이정도 규모의 불법 공매도가 발생할동안 정부는 뭐했는지가 더 짜증난다"고 말했다. 이어 "공매도는 합법적으로라도 개인 투자자들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데 불법공매도까지 판을 치니 어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2. 30대 이모씨는 "국내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를 하려면 교육도 이수해야 하고 사전 의무제도도 거쳐야 한다. 생업에 종사하는 일반 투자자들에게 그런 것부터가 이미 장벽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설마했던 불법공매도 거래가 현실화됐다. 안 그래도 공매도에 허덕이던 개인 투자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공매도 제도 개선이 아니라 공매도의 폐지를 촉구한다. '동학개미운동'을 통해 수급 주체로 나선 개인들의 불만이 커지자 금융당국도 급한 불을 끄기 시작했다. 증권업계는 이번 사태가 공매도 제도 재정비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불법공매도까지 판치는 한국증시
국내 한 대형 증권사가 지난 2017년부터 2020년 5월까지 무려 3년3개월간 939개사 1억4089만주에 대한 공매도를 실행해 제한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금액만 5조9504억원에 달한다. '국민주'로 불린 삼성전자의 주식을 2552만주 공매도했고 SK하이닉스(385만주), 한국전력(196만주), 현대차(88만주) 등 증시 우량주들이 모두 희생양이 됐다.
개인 투자자들은 아연실색했다. 연초부터 올해 상반기에만 삼성전자에 올인하며 15조원 넘게 사들였지만 주가는 지지부진해 손실이 컸기 때문이다. 현행법이 허용한 공매도만으로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인식돼 빠른 제도 정비를 촉구하고 있었는데 불법공매도까지 판치니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 판 다음 나중에 다시 사서 갚는 매매 기법으로 주가가 하락하면 수익을 낼 수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전체 거래대금 중 공매도 거래대금의 비율이 7% 정도로 다른 해외 선진 증시에 비해 높은 수준이 아니라는 긍정론도 나온다. 하지만 대다수 개인 투자자들은 다른 나라의 증시 환경 및 공매도 제도의 기반 자체가 우리나라 주식시장 환경과 다르다고 근원적 문제 해결을 촉구한다.
퀀트K 리서치센터가 지난 3년간 코스피와 전체 거래량 대비 공매도 거래량 간의 상관관계를 비교한 결과, 코스피가 하락할 때 전체 거래량 대비 공매도 거래량이 월등히 빠르게 증가하는 이른바 ‘공매도 폭탄’ 현상이 나타났다. 코스피, 코스닥 양대 시장의 거래대금 대비 공매도 거래금액 추이를 살펴보면 양 시장 모두 거래금액은 감소하는데 반해 공매도 거래금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의 급락 배경을 지나친 공매도에서 찾고 있다. 소유하지 않은 주식을 매도하는 공매도는 유동성 공급, 주가 거품 방지, 투자자 거래비용 절감 등의 순기능이 있다고는 하지만, 국내 증시에서는 하락장에서 주가 하락을 가속화하고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역기능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내 증시의 공매도 시장에서 개인은 여전히 불리한 조건에 놓여 있다. 개인이 공매도를 할 경우 담보비율이 140%, 상환기간이 3개월인 반면, 외국인과 기관의 담보비율은 105%에 불과하고 상환기간은 무기한 연장돼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연초부터 삼성전자에 올인했다는 한 30대 개인 투자자는 “대외 악재가 있다고 해도 시장 상식을 벗어나는 하락세가 이해되지 않았는데 그 배경에 불법공매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라며 “더 큰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이 같은 범법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공매도 폐지하라" 개미들의 주장 힘 받나
“국내뿐 아니라 외국도 시장이 급변하면 공매도를 금지한다. 시장 상황을 봐서 필요하면 공매도뿐만 아니라 증시안정기금도 활용하겠다.”
김주현 신임 금융위원장의 이 같은 발언 이후 공매도는 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3000p를 넘어 순항하던 코스피 지수가 2300p마저 하회하자 금융당국이 대책 마련에 나서면서부터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날 공매도 연계 시장교란 행위와 관련해 “공매도를 둘러싼 불법행위를 반드시 뿌리뽑겠다는 각오로 금융당국과 검찰 등 관계 기관이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최근 한국거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시적 공매도 금지 같은 정책들을 즉각 시행해야 효과가 있다”며 “아직도 검토만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6일 ‘자본시장 민간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공매도 제도를 재정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매도 비중이 높은 '과열종목'의 공매도를 일시 정지시키는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제도'를 확대 운영하고 개인의 담보비율을 보다 확대해준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날 역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 기관과 합동으로 불법공매도 처벌 강화 및 공매도 제도 보완 방안을 논의했다.
다만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만족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매도 폐지는 차치하더라도 기관과 외국인에 대한 상환기간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원은 “상승과 하락, 양쪽 모두를 활용할 수 있는 투자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공매도 폐지는 정답이 될 수가 없다”면서도 “다만 불합리한 점이 있으면 개선시켜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dschoi@fnnews.com 최두선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